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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an 16. 2024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070.

기다리고 기다리던 당신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의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을까요?

당신은 알 리가 없을 겁니다.

물론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됩니다.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는 것이라고는 하나,

감히 나는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숨기려 합니다.

죽는 그날까지 나만 아는 비밀이어야 하니까요.


지하철 역에 내립니다.

사거리 같은 오거리를 지납니다.

예전부터 이곳은 교통량이 많고 사람도 많은 곳입니다.

몰래 숨어서 불장난이라도 할 게 아니라면

오히려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이

우리가 만나기엔 최적의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10분하고도 시간이 조금 더 남았습니다.

이 길만 건너면 드디어 당신과 마주 앉을 수 있습니다.

신호등의 빨간색 불이 오늘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집니다.

근처에 거울이라도 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비춰보고 싶습니다.

옷매무새도 확인해야 하고,

잔뜩 들떠 있을 얼굴 표정도 고쳐야 합니다.


차갑게 손목을 감아드는 바람에

왼손에 든 거베라 한 다발이 흔들립니다.

당신이 좋아한다는 이 꽃을 당신에게 건넬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요.


만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요?

내게 주어진 두 시간 남짓한 이 자리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까요?

마치 누군가를 만나 첫 데이트라도 하려는 듯 떨립니다.

아니, 그때보다 더 긴장이 됩니다.


파란색 신호등이 들어옵니다.

첫 발을 보도에 내딛는 순간 매장의 전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안 왔을 수도 있고,

내 시계(視界)를 벗어난 곳에 앉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 오지 않았기를 빌어봅니다.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하니까요.

이십 미터쯤 되는 이 길을 걸으며

마음이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선명한 색으로 물들인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기적을 행한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내 마음을 물들인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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