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야 제 맛
이백 마흔일곱 번째 글: 모든 건 이름에 걸맞아야 하겠지요.
저는 1994년 중반에 군복무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참 특이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병식당에서의 그 미스터리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체력 소모가 심한 탓에 식사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기 마련입니다. 철저히 보장된 1시간 남짓한 휴식 시간도 꿀맛이고요. 따지고 보면 뭘 먹어도 거뜬히 소화시킬 나이였지만, 매번 다른 종류의 국이 나오는데도 기본적인 맛이 똑같았습니다. 미역국이 미역국 같지 않고, 콩나물 국이 이름값을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사병들이 그때의 국을 '똥국'이라고 불렀을까요? 모든 건 제 이름값을 해야 하는 법입니다.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오늘의 날씨'를 들었습니다. 최저기온 -8°C, 최고기온 -2°C. 네, 맞습니다. 게다가 초속 15m의 강풍까지 불고 있으니 체감상으로는 -10°C 아래로 내려가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입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입장에선 충분히 호들갑을 떨 만하지만, 서울이나 강원도에 비하면 이 정도 날씨로 춥다고 할 수도 없을 듯합니다.
어쨌건 간에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매섭고 혹독한 추위가 닥치더라도 겨울은 추워야 정상입니다. 그래야 겨울이라는 제 이름값을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내일 낮에 갑자기 기온이 30°C에 육박하면서 이 한겨울에 느닷없이 반팔 티셔츠를 꺼내 입어야 한다면 정상적이라 할 수 없을 테지요.
그래서 오늘도 이 추위 한가운데를 뚫고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 있어 봤자 계속 늘어지기밖에 더 하지 않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사람은 움직여야 합니다. 설령 엄동설한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어났으면 웅크린 이불속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더 누워 있으면 안 될까, 지금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나, 하며 고민이 될 때 이 고민을 해결하는 기준은 바로 몸이 싫어하는 쪽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가끔 정년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예전의 교장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퇴직 후 집에만 있으면 5년을 못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겨울은 추워야 제 맛입니다. 그것이 정상이고, 제 이름값을 하는 것이겠습니다. 얼마나 춥든 우린 우리의 계획대로 움직이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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