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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an 23. 2024

손톱의 상실

0590

아침에 손톱을 잃었다.


열 개 밖에 없는 나의 손톱 중에서 오른쪽 엄지손톱 전부를 잃었다.


손톱이 사라지자 손톱 안쪽 반달모양의 루놀라 Lunula도 사라졌다.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하나의 바로미터가 내 몸에서 사라진 셈이다.


손톱이 없는 상태도 장애일까.


손톱이 사라지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피가 솟구치지 않아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내 몸에서 가장 견고한 표피인 손톱이 작은 충격에 무너지다니!


내 손톱의 수분 함량이 14%를 채우지 못한 탓이 크다.


손톱을 이루는 케라틴 Keratin이 견고하지 못해 상층부, 중층부, 하층부의 결속이 느슨했다.


엄지손가락을 밴드로 감싸자 휴대전화의 지문이 오류로 반응한다.


휴대전화의 활용이 불편해진다.


사라진만큼 손톱이 자란다면 얼마나 걸릴까.


당연했던 손톱의 존재가 새삼스럽고 아쉽다.


당분간 손톱의 부재를 핑계로 글쓰기를 멈출까도 고민해보았으나 옆에 있던 검지가 대신 나서기로 해 이는 무산되었다.


엄지가 파업하자 머리감을 때 나머지 손가락이 더 바빠진다.


따봉을 못한다.


보는 이마다 이유를 물어 악수도 기피한다.


자꾸 뒤춤으로 숨기니 다한증으로 오해한다.


문자보낼 때 더디고 느리다.


안 쓰는 발톱을 하나 골라 이식을 해보려니 사이즈가 안 맞고 설령 하더라도 손에서 구수한 발냄새가 날 것 같아 시도를 접는다.


앞으로 150일간은 손톱의 재생을 위해 은둔해야겠다.


어서 불가피한 외출을 위한 깔맞춤 골무를 마련해야지.


https://brunch.co.kr/@voice4u/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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