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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an 25. 2024

세 가지 소원

이백 마흔아홉 번째 글: 소원을 말해 봐!

어릴 때,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우리 집엔 굴뚝이 없는데 그러면 산타 할아버지가 어디로 어떻게 오지, 하며 혼자서 괜한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달에서 토끼가 계수나무 밑에서 떡방아를 찧는다는 옥토끼 설화를 의심 없이 믿기도 했습니다. 최근에야 이 설화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게서 전래된 것이라는 어떤 자료를 보긴 했지만 말입니다.


문득 출근길에 높이 떠 있는 달을 보았습니다. 그게 보름달이든 아니든 별 상관은 없을 겁니다. 어릴 때 같았으면 계수나무가 어디 있는지, 토끼는 지금 무엇을 하는지, 하며 살펴봤겠지만, 이제 그럴 나이는 지났습니다. 그게 보름달이든 아니든 별 상관은 없을 겁니다. 대신에 아직도 저런 달을 보면 소원이나 빌어볼까, 하는 마음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의 소원에 대해서 말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그리고 셋째도 조국의 독립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래서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겠을 테지만, 저는 다분히 속물적인 인간이라 제 소원은 지극히 사적이고 세속적입니다.


저의 첫 번째 소원은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지 않은 만큼의 돈이 저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너무 속물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물론 막대한 돈이 주어진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하게 살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다만 돈에서 오는 걱정은 덜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긴 합니다. 어마어마한 돈이 저에게 주어진다면 정말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을까, 만약 달라진다면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하고 말입니다. 당연히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만한 돈이 주어진 적도 없는 데다, 그런 이유로 넘쳐날 만큼의 돈이 생겼을 때의 모습을 어떤 식으로든 상상할 수는 없으니까요.


두 번째 소원은 14살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왜 하필 14살이냐고요? 그때로 돌아가서 제가 좋아하는 것과 관련하여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철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이니 상상만 해보는 건 아무런 흠이 되지 않겠지요. 만약 제가 14살로 돌아간다면 일찍 철학 서적을 읽고 싶습니다. 앞도 뒤도 보지 않고 공부만 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의 철학과로 진학하고 싶습니다. 두 번 다시 교직에 몸담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은 저와 10살 남짓 차이가 나는 누군가를 기어이 찾아내어 그 사람과 한 번 사랑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마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제가 30살이 될 때까지는 기다려야겠지요. 그전에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 중학생이 되기 전에 찾아내어 그녀가 자라는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고 싶습니다. 아, 물론 그 사람을 스토킹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두 사람 다 성인이 되었을 때 제 마음을 말하고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려 합니다.


당연히 세상에 지니 따위는 없습니다. 또 마냥 요행을 바라서도 안 되는 것이겠습니다. 그래도 가끔 저는 이런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뒷맛은 영 개운치 못해도 혼자 즐거움에 잠시 젖어보기도 합니다. 하다 못해 제가 지금 제일 원하는 게 뭔지는 알 수 있으니까요.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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