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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an 28. 2024

늦은 시간 파스쿠찌

2024년 1월 28일 일요일, 흐림


저녁을 먹고 앉아 있다가 보니 갑자기 달달한 것이 한 잔 먹고 싶어졌다. 충분히 집에서도 차 한 잔을 타 먹을 수 있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오늘 쓴 글도 두 편밖에 안 되었다. 지금 가서 대략 2시간 반 정도 쓰면 두세 편은 더 쓰지 않겠나, 하는 계산도 있었다. 늘 쓰는 6,300원이라는 비용이, 두 시간 반쯤의 시간을 보낸 것과 비교하면 그다지 낭비라는 생각이 안 들어 과감하게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늘 있던 그 센스 있는 여점원이 있었다. 여러 명의 점원 중에서 난 그 점원을 볼 때 가장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늘 앉던 자리,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어딜 가나 내가 앉는 자리는 거의 지정석이 되어 버린다. 갈 때마다 늘 그 자리는 비어 있다. 그 많은 자리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내가 앉는 자리만 비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잘 앉지 않는 자리에 결국은 내가 자주 앉는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이 매장은 전체가 2층으로 되어 있다. 간혹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음료가 나올 때까지 임시로 1층에 기다리곤 하지만, 웬만해선 죄다 2층으로 올라가 버린다. 2층으로 올라가면 좋은 점이 두 가지 있다. 일단은 화장실이 2층에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2층에 올라가면 점원으로부터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몇 시에 와서 몇 시간을 틀어박혀 있든 어지간해서는 눈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면 무조건 1층 자리에 앉는다. 집 앞에 있으니 나오기 전에 화장실을 들르면 되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와봤자 기껏 머무는 시간은 길면 2시간 반 정도이다. 점원 둘과 나만 있는 곳이다 보니 예상외로 실내가 조용하다.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도 글 쓰는 데 있어서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뭐, 이만하나면 글 쓰는 데에 있어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비록 내가 내 돈을 주고 주문한 음료이긴 해도 달달한 바닐라 라떼는 일종의 덤이다. 한창 필(feel)을 받아 글을 쓸 때에는 글만 쓴다. 그러다 잠시 막히거나 문단이 바뀌거나 혹은 하나의 글이 끝나면 빨대로 바닐라 라떼 한 모금을 들이켠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파스쿠찌에 오는 건 처음이지만, 이곳은 올 때마다 꽤 만족스러운 상태로 돌아간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들 중의 한 곳이 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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