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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an 26. 2024

정신없는 가족

061.

2024년 1월 26일 금요일, 흐림


지금 온 가족이 정신이 없다.

일단 난 내일 서울에 가기로 되어 있다. 온라인 글쓰기 단톡방에서 처음으로 갖게 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어쩌면 못 갈 만한 일이 생겼지만, 벌써 두 달 전에 잡은 약속이라 취소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첫 모임부터 그런 식으로 펑크를 내고 싶진 않다. 같이 만나기로 한 회원들이 그 일 때문에 시간을 비워놓았을 테니 말이다.


아내와 딸은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에 가야 한다. 자대 배치받은 아들을 보러 가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더 중요한 용무가 있다. 기본적인 시설은 다 구비되어 있지만, 그 외 자잘한 것들은 각자가 준비해야 한다. 2인 1실 체제라 룸메이트와 적절히 나눴다며 아들이 물품 리스트를 보내왔다. 말은 몇 가지라고 했지만, 막상 보니 거의 이삿짐 수준에 버금갈 정도였다.


어젯밤부터 준비는 시작되었다. 리스트를 쭉 훑어본 아내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결정과 실행에 있어서는 가히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무슨 AI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아내의 저 빈틈없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그게 부성과 모성의 차이인가 싶다는 것이다.


먼저 집에 있는 것과 없는 것부터 파악했다. 있는 것은 잊어버리기 전에 바리바리 챙겨놓았고, 없는 것은 폰으로 바로 주문을 넣었다. 쿠팡 새벽배송을 통해서라도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는 아내를 보니 혀를 내두를 만했다. 아마 적지 않은 물건들이 집으로 배달되고 있을 테다.


아들에겐 이번에 같이 못 가게 되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서울 모임은 녀석도 알고 있는 데다, 내게 약속의 우선순위는 중요도에 있는 게 아니라 순서에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 충분히 이해해 줄 거라 믿을 뿐이다.


내일 아내와 딸이 무탈하게 다녀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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