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온 치과
이백 쉰네 번째 글: 어떤 이별 의식.
다시 이렇게 치과에 왔습니다. 52년간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정든 아랫니 네 놈을 떠나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글쓰기 친구 중 한 분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손바닥에 선명하게 손톱자국이 나고 조명이 노랗게 보일 때쯤 되니 치료가 끝나더라고 말입니다.
뭐, 사실 부분 마취를 하니 그분이 말씀하신 정도의 아픔을 느낄 리는 없다고 해도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합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치과라는 곳이 그렇지 않습니까? 간간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비명(?) 소리, 저 몸속 깊은 곳에서 들리는 듯한 기분 나쁜 전동 드릴 소리, 그 좁은 입 안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각종 기구들이 치아와 맞부딪쳐 나는 소리 등을 생각하면 유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병원 내 대기실에 앉아 있습니다. 제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부터 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마치 실험 쥐처럼 다루어질 걸 생각하니 이 또한 반갑지 않습니다. 의사를 만나기 5분 전입니다. 이 나이에 이까짓 게 무서워 도망가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건 아닙니다만, 은근히 이름을 늦게 불러줬으면 하는 마음도 드는 순간입니다.
사람이 그렇더군요. 실컷 멀쩡할 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고 별다른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가 어딘가 탈이 나면 후회하기 마련이지요. 저 또한 병원에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갖곤 합니다. 조금 더 관리를 잘했다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30년 넘게 피워 온 담배를 좀 대강 피울 걸, 너무 단 음식은 먹지 말 걸, 너무 단단한 음식은 가급적이면 피할 걸, 하는 괜한 후회가 앞섭니다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지요.
솔직히 저번 진료 때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말만 하면 치아나 잇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관리해야 잘하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 아무튼 남은 치아는 어떻게 해서든 잘 관리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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