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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Feb 12. 2024

감진고래(甘盡苦來)

2024년 2월 12일 월요일, 흐림


고진감래,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이라고 했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오니 지금 당장의 쓴 것은 참고 견디라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지금의 이 시점을 굳이 사자성어식으로 표현하면, 고진감래가 아니라 감진고래(甘盡苦來)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단 것, 즉 연휴가 다 갔으니 이제 돌아올 것은 쓴 것, 즉 일상밖에 남지 않았다. 어차피 명절 연휴에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차례도 지내야 하고, 그동안 사느라 바쁜 친인척들도 만나 안부를 나누고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일 테다.


나는 처가가 차로 얼마 안 가도 되는 거리에 있어서 오고 가는 데 시간적인 소모는 거의 없지만, 국토를 종으로 횡으로 다녀와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이 나흘이라는 연휴 자체도 그다지 길다고 볼 수도 없다. 게다가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는 상태라면 가야 할 곳이 한 군데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보면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신 내 입장에선 가야 할 본가라는 곳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나마 시간적인 소모는 거의 없는 셈이다. 뭐, 그런데 사실 이런 걱정도 하나 마나 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요즘 차례 지낸다고 해서 서울로 지방으로, 더 먼 곳으로 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들은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조상 타령을 하고 있느냐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런 그들이 틀렸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 자기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데, 누가 누구의 삶이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하겠는가? 자신의 조상을 모셔야 하는 걸 높은 가치로 삼는 사람은 이 연휴 기간에 조상에게 예를 갖추면 되고, 죽은 이보다는 산 이가 먼저라며 현실적인 즐거움과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사면 되는 것이다.


감진고래, 달디단 나흘의 휴식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마지못해 직장을 다녀야 하는 사람이건, 이젠 쓰디쓴 노동의 시간만 남았다. 여독이라고 해야 할까? 얼른 연휴의 단 잠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뛰어들어야 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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