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대장 시절 소대에서 자해를 했던 전우가 있었다.
중대장님과 식사 중이었는데 당직 근무를 서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중대장님 일병 김진성(가명)이 배에 칼이 꽂힌 상태로 쓰러져서 웃고 있습니다. 빨리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같이 있던 나도 같이 듣게 되었다.
바로 부대로 뛰어갔었을 때는 진성이가 목욕탕 입구해서 웃으면서 아프다고 칼을 빼달라며 누워있었다.
"소대장님. 배가 너무 아픕니다. 칼 좀 빼주십시오."
나는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고민을 했다. 내가 배운 건 무언가 몸에 박혔을 때 급하게 빼지 말고 그 상태로 병원에
옮겨야 된다고 배웠다. 웃으면서 아프다고 빼달라고 하고 초점이 없는 눈빛을 띄며 살려달라고 하는데 칼을 바로 빼주고 싶었다.
앰뷸런스 운전병은 병장이었는데도 당황해서 시동을 많이 꺼트렸고 운전대를 잡은 손은 많이 떨리고 있었다. 중대장님과 의무지원관 그리고 나는 칼을 그대로 감싸 쥐고 옷을 덮어 지혈을 하고 바로 병원으로 후송을 보냈다.
그렇게 수술을 마치고 진성이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상황을 알려줘야 되는데 말을 전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진성이는 어릴 때 씨름을 하다가 부상으로 프로팀에 가지 못하고 군에 입대를 했었다.
아버님은 식물인간인 상태로 계셨으며 어머님은 붕어빵 장사를 하셨다. 중대장님이 어머님과 통화를 하고
어머님은 몇 시간이 지나서 병원으로 오셨다. 나는 입대를 하고 얼마 안돼서 일어난 사고라 처음 겪는 일이었다.
어머님이 병원에 오셔서 아들을 보지도 않으시고 중대장님과 단장님을 먼저 찾아뵙고 말씀하셨다.
"아들을 잘 못 키웠습니다. 사죄드립니다. 엄마로서 힘들게 살다 보니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거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
아직도 어머님의 인사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내가 생각했던 상황은 최소한 멱살이라도 잡고 욕을 하고 책임지라며 큰소리를 냈어야 하는데 오시자마자 하시던 말씀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관리를 똑바로 하지 못한 내 무능력함에 창피했고 너무 죄송했다.
그 인사를 받던 중대장님은 눈물을 흘렸고 주위에 있던 전우들도 다들 울었다.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곤 조용히 자고 있던 진성이를 보고 살아있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했다.
한마디 원망 섞인 말을 하지 않으셨다. 저렇게 이야기하는 어머님의 속은 어떠실까?
진짜 많은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화를 내고 욕을 해주셨으면 좀 더 편했을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서 어느 정도 회복을 한 진성이를 보러 병원에 갔었다.
진성이랑은 씨름 얘기를 하면서 이미 많이 친해져 있던 상태였다.
"왜 그랬냐?, 씨름할 때 더 힘든 일이 많았어도 저렇게 하지 않고 잘 참았을 텐데.?
분대장이 평소에도 많이 괴롭혔는데 그날따라 심하게 괴롭혔다고 했다.
그리고 분대장에게 대드는 건 하극상이라 처벌을 심하게 받을 거라고 윽박질렀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괴롭힘을 당하다가 어머니 생각이 났다고 한다. 내가 한대를 치거나 욕을 해서 하극상이 되면 처벌을 받을 거라는 스스로의 생각이 어머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참았다고 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칼을 들고 배를 찔렀는데 기억이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어머님이 사과하는 모습을 봤고 몰래 들어와서 자는 척을 했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어머님을 보고 얘기를 할 수 없어 병실에 다시 누워 자는 척을 했고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반성을 했다고 했다.
사실은 관리를 잘하지 못했던 중대장님과 내가 잘못이 컸는데 어머님의 그런 행동이 아들에게 뼈저리게 가슴 시린 교육이 된 것 같았다. 그 이후 사고 처리를 하는데 최선을 다해서 했다. 규정에 맞는 조치를 했고 부대에서 모금을 해서 어머님께 전달을 해드렸다. 비록 그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어려웠던 형편 속에서도 화를 내지 않으시고
묵직한 메모를 남겨주신 어머님을 나는 진짜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된 지금 나는 같은 상황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화를 내지 않고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적절한 언어와 매너로 저렇게 사람들의 잘못을 반성하게 할 수 있을까?
* 그때 가르침을 주셨던 진성이 어머님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처음 느껴봤던 너무나 묵직한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