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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 Aug 28. 2024

텍스트와 나라는 사람

텍스트에 관한 글에 앞서 나누는, 정중한 인사 정도로 읽어주세요.

글쎄요, 저라는 사람의 이력도 특이한 걸까요? 

학부와 대학원을 거치며 여러 전공을 이수했습니다. 무얼 할지 몰랐다기보다, 조금씩 새로운 분야가 늘, 늘, 제 눈에 들어왔어요.  


무언가를 그렇게 알고 싶었던 걸까요? 공부를 별 다른 성과 없이 끝내고 저는 독립 매거진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십여 년 전의 일이네요.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였어요. 그 당시 저는 일상을 사는 많은 사람들의 하루와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유명인들의 인터뷰를 보며 생각에 잠겼죠.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어떤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쉬는 날이면 무얼 하는지, 잠들기 전의 루틴이 있는지, 세세한 것들을 질문해 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먼 사람들이잖아요. 우리 같은 모두에게 그들의 하루를 질문해 주면 어떨까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 챕터였습니다. 


다음은, 큐레이팅 북샵으로 이어집니다. 수익화 있는 지속적인 구조로 매거진을 발행하지 못하게 되면서 한계에 부딪혔고, 그 사이에 읽어가는 책들만 더 쌓여갔습니다. 독립매거진을 발행하다 보니, 이런저런 독립서점들도 제집처럼 드나들었죠. 주인장에 의해 선별되고 소개되는 책들 틈에서, 책을 큐레이팅하는 일에 엄청난 매력과 설렘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산과 대구에서 작은 책방을 열게 되었어요. 책방 주인이 되었습니다. 다만, 손님을 맞이하는 것보다 공간 안에 책 속의 텍스트를 찾아 전시하고 읽은 책을 소개하는 일에 흥분해 있는 이상한 주인이었어요. 책을 팔아야 하는데... 책이 내 새끼 같아서 누가 함부로 건드리는 것에도, 베스트셀러나 실용서만 찾는 일에도, 샐쭉해지고 마니 어떻게 계속할 수 있었겠어요. 그즈음, 십 년간 만나온 남자와 결혼도 하게 되었네요. 그렇게 두 번째 챕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이에요. 그 후, 그 남자와 그 여자는 함께 빵 굽는 것을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고 어찌어찌하는 과정을 거쳐 작은 수제베이커리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책이나 사람을 오래 알아가다가, 어떻게 뜬금없이 '빵'이냐고요? 보이지 않고 쉽게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들로 생활을 지탱해 나가는 일에 조금 지쳐있었어요. 뚜렷한 실체를 지니고, 사람들의 삶에 가까워서, 더 이상 나의 생활을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했어요. 우당탕 쿠당탕하다 보니 베이커리 운영도 육여 년이 되어갑니다.  


 여기까지가 이십 대부터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이십여 년 간 저의 이력이랍니다. 


 스무 살이 되고부터 삶의 방대한 시간이 흘러오는 동안 저와 늘 함께했던 유일한 것은, '사람'이 아닌 '텍스트(text)'였어요. 텍스트의 사전적 정의는 대략 '문장이 모여서 이루어진 한 덩어리의 글'이죠. '한 덩어리의 글', 그게 제 삶의 기둥이었어요. 매 순간 책을 읽었고, 책 속의 한 덩어리의 글로 인해 위안받고 용기내고 생을 이해하고 복잡한 이 세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더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어떤 책에도 건질만한 텍스트는 존재한다는 거예요. 저명하고 훌륭한 책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손에 잡히는 어떤 책 한 권에도 우리에게 의미 있는 텍스트는 존재해요. 그것은 온전한 책 한 권과 별개로 살아 숨 쉬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깨달음 이후, 내가 읽어나가는 모든 책에서 몇 덩어리의 글이라도 모아두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나와 같이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 한 덩어리의 글이 누군가에게 다가가 울림을 줄 거라는 분명한 느낌이 들었어요.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하고 함께 돌려본다는 생각으로 제가 가진 '텍스트'들을 나누어보고 싶어요. 어느 장면, 어느 장르, 어느 목소리에서 나타난 텍스트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공감하기, 끼어들기, 놀라기, 웃음 짓기, 사고하기, 답변하기, 대범하게 수정하기, 대화나누기, 위로받고 건네기, 이어 붙이기, 소개하기 등등을 말이에요. 


그것을 이 공간에 나누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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