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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 Sep 12. 2024

텍스트 에피소드 3

혼자의 시간을 찾는다.

내가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에이미 션)


실제 현실에서는, 특히 어린 소녀 시절의 나는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걸 겁내는 쪽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그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 끊임없이 걱정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만큼은 그런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줌파 라히리)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끔 애써 표정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사라지고, 혼자 고요히 머물 수 있는 고독의 순간이 온 것이다. 열두 살에 불과했지만, 나는 의무감의 무게와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안도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완벽히 혼자 있기만 하면 되는 그런 따분한 밤을 나는 무척이나 갈망했다. (헬레나 피츠제럴드)


그 어두운 영화관에서 나는 스크린의 조명에 비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가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내 감정이 최우선이다. 내 주변의 세상을 알려면 가끔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된다. (메건 기딩스


나탈리 이브 개럿 편집의 『ALONE』



드디어 주변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고 완전하게 혼자인 상태로 소파에 앉아 책을 집어드는 순간, 안도감으로 깊은 곳에서의 숨이 훅 나온다. 그 숨은 내게 중독과도 같다. 그제야 부드러운 솜뭉치에 몸을 누인 듯 내 온몸과 정신은 가장 자연스러워진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몇몇의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어둑한 소파에 조명 하나를 밝힌 그 순간을 간절히 상상한다. 조금만 버텨, 돌아갈 수 있어. 나는 늘 혼자인 것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타인에게 포용적이면서도 모두들 틈에서 거침없이 유려한 이들을 보면 남 모르게 부러워했다―부러움에 질투까지 느끼면서도 전혀 그들처럼 지내고 싶지 않다는 고집스러운 마음은 얼마나 모순이었을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뭔지 모르게 위험해 보였고, 속으로만 침전해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기도 했다. 나는 왜 그럴까? 지금 와 고백하자면 혼자여야 스스로 온전하다고 느끼는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러기에 혼자의 시간과 고독에 관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때로 인덱스를 표시해 둔 글 조각 몇 개를 모아두고 살펴보면 새로운 인식을 얻기도 하는데. 내게 있어 혼자 있는 시간 혹은 혼자이기를 원하는 상태, 모두 '타인의 존재'와 깊이 연관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식이 늘 과잉 상태에 있고, 함께 있을 때면 존재감의 뚜렷한 비대칭성(나는 작고 타인은 거대한)을 경험했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람. 그것은 불편함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안전한 곳에 머무르기 위해 혼자이기를 원했다.


일자 샌드는 『센서티브』에서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에 대해 "숨어 있는 뉘앙스를 남들보다 더 많이 인식하고, 받아들인 인풋은 더 깊은 곳에 입력된다."라고 했다. 언제나 타인이라는 존재는 내게 너무도 큰 자극이었다. 그들의 표정과 말투, 몸짓과 의도는 내게 많은 심상들을 불러일으켰고 그러한 잔상은 오래도록 남았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별로인 존재라던 한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나 또한 인간 자체는 제법 실망스럽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 시선이 타인 만을 향하는 것은 아니고, 타인을 대면하고 그들에게 말하고 행동하고 속으로는 또 다른 이면을 감춘 나를 향하기도 한다. 사람 자체의 본성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사람을 향한 실망과 두려움은 더 큰 파도로 바위 위에 서있는 나를, 나의 자아를 휩쓸어 간다. 한 없이 나약해지는 것. 움츠러드는 것. 그들도 나도 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 그들도 나를 보며 실망하고 험담하고 의뭉스러워 할 수 있다는 것. 내 어색한 말투, 웃는 표정의 끝, 손이 떨리는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볼 수 있다는 두려움. 이 모든 파도로부터 간신히 버티어 서 있고자 하는 나. 그렇게 나는 혼자인 시간을 찾는다. 타인도 나도 서로를 알아차릴 필요 없는 곳.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고립은 고독과는 무관하다. 물론 고독한 시간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 의무로 꽉꽉 채워진 주중에 참석한 파티에서, 방 안 가득한 스물다섯 명의 사람들 속에서도 고립될 수 있다. 고립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도망치고 싶은 기분, 거리를 두고 싶은 기분, 내가 겉모습 너머에서는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혹은 문제투성이인지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서 장벽을 세우고 그 뒤에 숨고 싶은 강박과 관계된 느낌이다.


'네 삶에 다른 사람들은 별로 필요 없어. 너도 알잖아. 넌 혼자로도 완벽하게 괜찮아.' 이것은 자족감으로 가장한 두려움의 목소리, 독립성으로 가장한 고립의 충동이다. 사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친구 그레이스가 한때 압도당했던 것과 같은 불안이 담겨 있다. 바깥세상은 너무 무섭고 위험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느낌, 다른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락하면 그들이 반드시 나를 실망시키거나 다치게 할 것이라는 확신, 스스로가 취약해지는 것이 너무 싫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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