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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 Sep 19. 2024

텍스트 에피소드 4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모든 남자와 여자는 아니, 동성이라도 혹은 육친마저도, 결코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행복한 순간은 물론 있지만 그건 대체로 오래가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그 사실에 대해 이미 알고 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을 끝까지 파고들면 어떻게 될까. 본질을 드러내고 서로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


 가쿠다 미쓰요의 『보통의 책 읽기』, <더티 올드맨의 거대한 그림자> 


 우리는 타인을 알 수 없다. 제아무리 가깝고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은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 질문에서의 외로움이란, 상대방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과 강하게 이어지는 게 아닐까. 나의 입장에서는 그런 의미에 가깝다. 도무지 타인을 알 수 없을 때, 나는 외롭다. 하지만 많은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함께 오랜 시간 생활한 부모와 형제들로 이루어진 원가족 안에서도 어느 순간이 되면 '아, 알 수 없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저 내 시선으로 보는 상대방의 모습을 진짜 그 사람으로 판단 내리고, 도무지 읽히지 않는 일들이 벌어질 때면 제대로 판단해 보려 발버둥 치다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이 내가 아는 가까운 관계의 전부다. 당연히 원가족으로부터 달성하지 못한 '모든 것을 아는 사이―더 이상 의문스럽지도, 날 외롭게 하지도 않는'의 신화는 결혼을 통해서도 우정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내 결론이다. 지금도 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저 낯선 사람은 누구지?라는 의문에 가볍게 몸서리칠 때가 있다. 물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다고 믿는 친구랑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내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경험이 덧입혀진 사람이 앞에 있다는 새삼스러움에 다가서던 마음이 살짝 경색되기도 한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채, 우리는 무수한 관계를 그리며 살아간다. 더듬더듬 그렇게 살아간다.


내 앞의 타인을 알지 못하는 것은 비록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누구도 결코 서로를 알지 못하는 것은 숨겨진 최적의 궤도를 이루려는 삶의 비법이 아닐까. 그러니 오, 모든 이여, 소중한 모든 이여! 우리는 모두 신화이고 신비롭다는 관점은 얼마나 찬란한가.  


 

밤마다 나는 뮤지엄 타워의 불 켜진 창문을 바라보았고 밤새 거기서 일하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야 나는 금요일이든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밤에 그 불빛을 보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은 늘 켜져 있었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내가 지켜본 그 시간 동안, 자정을 지나 새벽 세시가 될 때까지, 햇빛이 충분히 밝아져서 전등이 여전히 켜져 있는지 알아볼 수 없게 될 때까지, 거기서 일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여러 해가 지나서야 내가 어떤 신화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간에 그 타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윌리엄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이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윌리엄은 뮤지엄의 불빛과 같았고, 다만 나는 내 삶이 뭔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뿐이었다.


내가 오 윌리엄! 하고 생각할 때, 그건 또한 오 루시! 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오 모든 이여, 오 드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모든 이여, 그런 의미는 아닌가?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빼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오, 윌리엄!』


 

이 신비한 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그 사람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은 그럼에도 존재한다.

종종 생각하고 움직이고 말하는 나를 떨어뜨려놓고 내가 바라보면서, '나라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라는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이고 도대체 저들은 누구일까.

어떤 기묘한 원리로 내 눈앞에 드러나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건가. 역시 가쿠다 미쓰요다. 가쿠다 미쓰요의 표현을 읽다 보면 소소한 전율이 일 때가 제법 있는데, '사소한 기억과 습관과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개인'이라는 표현 앞에서도 한참 서성였다. 어찌어찌 완성된 것처럼 존재하는 한 개인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 너무나 내밀하고 복잡다단한 모습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사소한 기억과 습관과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개인. 미지의 개인은 그런 것이다. 수많은 가능성의 조합으로 그들은 그들스럽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들스럽게 존재하는 것, 그것 만이 유일한 이해가 될 수 있다.


 


'사소한 기억과 습관과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개인'

―가쿠다 미쓰요의 <보통의 책 읽기>, 일상에 녹아든 만화경 세계에 나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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