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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 Sep 02. 2024

텍스트 에피소드 1

꿈, 현실, 삶, 나의 무늬

결국 연극을 그만뒀다. 그만두는 건 너무 쉬웠다.


꿈의 자리를 채웠던 것들이 다 빠져나간 뒤, 내게는 남은 게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애썼을 뿐이다. 그것은 꿈 바깥의 삶이었고, 나의 배움은 꿈이 사라지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난 후에야 내가 단 한 번도 꿈 바깥의 삶을 살뜰하게 돌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왜 아무도 우리에게 꿈 바깥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에도 무엇이 되지 않았을 때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무엇을 하든 나로서 사는 일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꿈에서 걸어 나와 그 바깥을 사는 내게 중요한 것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라, 간절히 원하지 않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이 현실을 유쾌하게 끌어안는 법이다.

현실에 꿈이라는 환상 한 방울을 섞는 법 말이다.  


 신유진의 『상처 없는 계절』 


 


꿈. 나는 어떤 꿈을 간직했더라?

몸과 마음이 비틀거릴 때면 끄적여둔 글들을 들여다본다. 꿈이라.

날짜별로 적힌 파일들을 하나하나 열다가 너무 나다워 웃음이 났다. 꿈을 단정 짓는 것을 저리도 어려워했구나.

진지하게 적어 내려간 글에는 죄다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어떠하고 싶다'의 애매한 형태 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 애초에 꿈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말할 수 있는 어휘가 내게 없었던 것이다. 분명 치열하게 나라는 사람과 앞으로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적어 내려간 글임에도.


 


어느 날의 꿈에 관한 기록 1


 나는 어떤 형태든 말과 글을 다루기를 원한다.

내 안에 생각과 상상과 문답이 있다. 그 안에는 삶이 있고 사람이 있고 옳고 그름도 있고 아름다운 것과 더불어 치졸한 것들도 있으며 여러 상반된 가치들이 있다

그것을 밖으로 꺼내어 표현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에 관해 집중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내게는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어느 날의 꿈에 관한 기록 2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

아니,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 걸까?

한 권의 책과 그 속의 활자들이 주는 황홀경에 대한 감각을 제외하면 어떤 것도 내 안에 확실치 않은 느낌이다.

 내가 세상에 알리고 싶은 생각과 가치들, 정신을 움직이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고, 역동적이고, 삶을 긍정 혹은 부정하게 하는 것들을 나는 옮기고 싶다. 나에게로부터 어딘가로.  


 이상적인 것.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기나긴 문장으로 만이 설명되던 무엇. 당장은 이 세상에 명확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을지라도 '나'의 본질에 가장 맞닿아 있는 나만의 자리.

그런 일을 찾는다면, 그것이 내 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가 최대한 진실되게 표현한 '나의 꿈에 관한 생각'이었다.

하나의 명사가 아닌 여러 문장과 사색들로 채워낸 '꿈'에는 글과 사람, 통찰, 표현, 연결 등의 의미가 남아 있더라.


 연극과 극장의 주변에 머무르고 싶었으나 자리를 찾지 못해 떠나왔다는 저자처럼, 글로 세상과 소통하는 곳에 머무르고 싶었으나 자리를 찾지 못한 나도 그곳을 떠나왔다.  


이제 실체를 거 뭐 쥐어 더 이상 나와 주변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조금씩 눈에 보이는 것들을 낚아채며 다음으로 나아갔다.

독립 매거진을 만들던 일도 큐레이팅 책방을 운영하던 일도 '글' 가까이였지만, 현실에서의 다음을 약속할 수 없었다.

'다음'이 그려지지 않으니 실패한 '미래'가 당도한 듯이 불안한 것도 당연했다.

홀가분하게 꿈을 놓고서는 남편과 함께 베이커리 사업을 준비하는 것에 치이니 시간은 잘도 흘러주었다.


 베이커리는 시작되었고, 매일 생계를 위한 일을 견뎠다.

우리는 함께 노력했지만 기술을 익혀 손끝으로 빵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그였고, 사업에 관한 전반적인 기획을 하고 브랜드 스토리를 구성하던 내 첫 역할이 정돈되고 나자 금세 생기가 사라졌다.

꿈을 매몰차게 내려놓던 나의 정신과 마음은 이내 책과 글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고 아우성을 쳤다.

 이미 벌여놓은 일은 내게 그 아우성을 허락해주지 않았고, 현실의 하루는 조심조심 다루어내지 못하면 늘 몽롱하거나 자주 우울했다.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한동안 갖은 노력을 해보았다. 소소한 일상의 생활 거리들이나 현실의 자질구레한 부분들을 담아내는 어휘와 묘사가 드러난 책을 취향이 바뀌어버린 사람처럼 마구 챙겨보고.

모르는 누군가가 하루를 살아내는 모습의 영상들을 찾아 나섰다. 현실의 하루에 정을 붙이려는 절박함을 숨긴 채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주어진 하루를 부족하지 않은 마음으로 받아 들고 싶었다. 그때 나에게 가장 많이 속삭이던 속엣말은 이것이었다.


"다들 이렇게 하루를 살아. 너는 왜 그러지 못하니?"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삶을 사랑하지 못했다.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본질적으로 간절하게 원하던 꿈의 모습이 지워진, 내 하루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되고 싶었던 그 무엇의 근처에도 머무르지 못한, 나 자신을 미워했다.

어찌 되었든 난 최선의 시간을 견뎠고, 지금 내 안에 그 흔적이 남았다고 믿는다.

진짜 삶은 그 흔적이 이루는 무늬라는 것도 믿어야 한다.


 

여름밤에 읽은 그 희곡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생에서 정말 심각한 건 생활비를 버는 것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거예요"라는 대사였다.

이제 내게는 간절히 이루고 싶은 꿈은 없지만, 생활비를 벌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성실하게 가꿔나가고 싶은 현실이 있다. 책을 펼치면 어디든 극장이 되는 꿈 한 방울도 있다.


 신유진의 『상처 없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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