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색을 다오 그리하면, 당신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과거와 현재를 파악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초록의 숲을 좋아하고, 취미나 운동 또는 건강을 핑계로 틈만 나면 콘크리트 둥지를 떠나 산을 찾아가는 이유는 회피용 방어기제로 판단하면 거의 틀림이 없다.
이는 뜻 없는 도피성향이 아니다. 원시 시대부터 애초 나약한 영장류였던 인간은 맹수나 그 밖에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그나마 안전한 도피처인 초록 바탕의 숲으로 향하던 습성의 발현이다. 이것은 원초적 위험 회피 본능의 DNA가 당신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산을 좋아하여 등산이 취미인 사람들 전부가 그렇다는 얘긴가? 과연 그럴까...?
괴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문호이자 자연을 통찰하던 과학자였다. 그의 저서 '색채론'은 당시 뉴턴의 물리학적 색채론에 반기를 든 일종의 자연철학적 해석으로 유명하다. 뉴턴은 빛이 분해되어 색이 나온다는 물리적 현상을 프리즘이라는 증거로 설명을 했지만, 괴테는 사람마다 색상을 인식하는 분명한 차이를 경험하였고, 이를 근거로 정상 심리상태의 빛과 심리가 괴리되어 차단된 어둠이 충돌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추론하였다. 요약하자면, 빛과 어둠이 그 경계에서 혼합되면 색이 나타나는 일종의 관념적이자 현상학적 접근이었다. 그 예로서, 노란색은 밝음 속의 어둠, 파란색은 어둠 속의 밝음 따위로 해석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색이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감정과 인식의 심리 현상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색은 보는 사람의 감정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주관적 현상이라고 본 것이고, 오늘날의 색채 심리학이나 색채 예술론에도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괴테뿐만이 아니다. 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선호하는 색에 따라 인간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표준연구를 꾸준히 해왔고, 실험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성격과 내면 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수없이 색채 관련 실험이나 색채 검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혹여 당신이 앞서 언급한 초록색을 정말로 선호한다면, 당신은 누구보다 균형을 추구하고 심사숙고하며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매사에 성실하지만 주변 상황이나 타인에 대하여 지나친 조심성을 가진 당신, 변화의 필요성과 내면의 상처를 돌봐야 할 때고, 자기표현을 어려워해 위축감을 느낄 수 있으니 나를 치유할 수 있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노란색을 좋아한다면 고흐처럼 어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진보라색은 과연 정신질환자들만 좋아하는 색상일까? 색을 사용한다면 대개 그 사람의 정서와 일치하기 때문에 색채 사용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정서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고유한 성격을 색상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억지논리이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같은 색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인상으로 각인된 저마다의 색채를 지니고 있고, 각기 다른 이유로 인하여 특정한 색을 좋아하거나 또는 싫어한다.
환경이나 주어진 상황에 따라 좋아하는 색은 변하기 마련이고 보통은 여러 가지 색상을 함께 좋아한다. 또한 사람이 좋아하는 색상은 성장 과정이나 내면에 박혀있는 상처에 따라서도 차츰 변해가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색을 통한 표현에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시공의 흐름과 색상의 변화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만일 누군지 특정 색상을 줄곧 선호한다 하여 그를 어딘가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그의 과거와 견주어 그가 현재 처한 상황이 과거의 정상상태 (Static Condition) 균형이 잠시 흐트러진 상황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다.
우중충한 잿빛의 회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나 역시 회색을 좋아할리 없지만, 그렇다 하여 싫어하지 않는다. 잿빛 세상에 순응하여 학습으로 길들여진 탓일 수 있다. 강렬한 원색인 유채색도 싫어할 이유가 없지만 나는 무채색을 선호한다. 희지도 검지도 아니한 애매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