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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매장하다

옴니버스 콩트 : 미끼와 당의정

by 하이경

노인이 판단커니와 야생의 자연에는 거짓됨이 없지만, 무릇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명은 거짓말’이라는 기묘한 진실을 꿰뚫은 뒤 스스로를 관조자(觀照者)라 칭했다. 그의 이름은 장오(張悟)였는데, 매일 강가에 앉아 허울 낚시를 즐겨 했다.

수천 년 전에 세월을 낚았다는 태공의 전설을 알고 있던 그 노인 역시 낚시로 물고기를 잡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의 낚싯줄에는 바늘은 없고 미끼만 있었다. 그는 기만을 앞세운 사냥이나 낚시 행위 자체를 인간의 문명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이고 완벽한 사기극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허울 낚시의 목적은 명상을 위함이었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장오의 판단에 명상이란 떠도는 거짓말을 실제로 구체화하기 위한 고도의 술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미끼는 곧 약속이다. 생존을 향한 본능을 이용하여, 그 뒤에 숨겨진 잔혹한 구속을 은폐한다. 곧 문명이라는 허울은 우리에게 영원한 진보, 안정적인 삶, 그리고 진실된 사랑이라는 음흉한 미끼를 던진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갔고, 바늘이 없는 낚싯줄은 물결에 흔들릴 뿐이었다. 장오의 눈에는 강 건너편 도시에 높이 솟은 건물들이 마치 거대한 낚싯대처럼 보였다. 도시의 현란한 조명이 반사되어 일렁이는 물결을 보며 그는 또 생각한다.

'저 안의 피곤한 군상들은 오늘 무엇을 낚으려 하며, 내일 어떤 것들에 낚이려 하는가? 낚거나 낚이거나 행위 자체는 거룩한 생존수단이다. 과거 나의 생존수단 역시 미끼로 유인하는 수법으로 세상을 살았으며, 간혹 상황이 반전되어 낚으려다 되려 내가 낚인적도 많았다.'


그의 딸 수현은 도시에서 가장 성공적인 ‘미끼’를 물었다. 바로 결혼이었다. 수현은 결혼 후 몇 년 동안 행복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후 몇 년이 더 흐르자 장오의 예상대로 수현의 주변에서는 재산 다툼과 부당한 역할 분담,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묶어두려 했던 제도의 억압이 그들 부부의 현실을 짓눌렀다. 수현은 또 생각한다. 가장 문명화된 사기가 결혼 아닌가? 신뢰를 전제한 결혼이란 순 거짓말이기 때문이지. 제도와 정치적 도그마를 떠나 사랑을 소유할 수만 있다면, 판매는 물론이고 대여도 가능해야 한다. 이게 도대체가 말이 된다고 판단하는가?

어느 날 밤, 수현은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장오를 찾아왔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버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아요. 모두가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왜 저만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죠?"


장오는 낚싯대를 응시하던 시선을 수현에게 옮기고 무심히 딸을 바라보았다.


"수현아, 네가 움켜쥔 고통이란 네 남편과 아이를 비롯한 가족과 네가 속해있는 직장의 문제만이 아니다. 네가 악착같이 물고 있는 건 미안하게도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이다. 문명의 본질이 곧 사기라는 것을 전제하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상호 배신을 용납치 아니한 합의된 음모가 분명한 법이니... 낚시 바늘은 가장 달콤한 미끼 속에 숨겨져 있었고, 오래전에 입 속에 박힌 바늘을 지금에야 네가 깨달은 것일 뿐이다..."


수현은 울부짖으며 말했다.


"그럼 저를 구원할 진실은 어디에 있나요? 이 거짓말 같은 삶을 끝내고 싶어요."


장오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떠날 수는 없단다. 인간들의 문명이란 운명이라는 거짓말처럼 너의 혀 속에 깊이 박힌 바늘이다. 바늘을 억지로 빼내려 하면 살점이 뜯겨나갈 것이고, 설령 바늘을 빼낸다 해도 생존해야 하는 세상은 더 가혹한 야생이지... 구속이 없다면 자유란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들의 생존방식은 너의 생존보다 훨씬 더 야박하고 위험하지."


장오가 낚싯대를 들고 '관조'를 이야기하려던 순간, 수현이 절규하듯 외쳤다.


"아버지는 그 모든 거짓말을 바라만 보고 살라고 하시죠! 하지만 저는 이미 진실의 날카로움을 맛봤어요. 이 바늘이 제 심장을 찌르는 고통을 어떻게 연극처럼 바라볼 수 있죠? 저는 아버지처럼 무심해질 수 없어요. 저는 제 감정이 조종당하는 이 시스템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이것이 거짓이라면, 제가 원하는 진실은 여기에 없어요."


그녀는 문득 아버지의 낚싯줄 끝을 보았다. 바늘 없는 텅 빈 줄.


"아버지는 바늘을 버렸지만, 저는 아직 바늘을 물고 있어요. 그리고 이제 알았어요. 이 바늘을 물고는 살 수 없다는 걸."


수현은 갑자기 돌아서서 강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장오가 놀라 "수현아!"하고 소리쳤지만, 수현은 이미 깊은 물속으로 서서히 잠기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문명이 만들어낸 강 건너 도시의 강렬한 불빛을 향하고 있었다. 미끼를 버리고, 바늘을 뽑는 유일한 방법. 그녀는 자신이 낚시터 안에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낚시터 밖의 진실을 택하고자 했다. 고기가 바늘을 문 채 물 밖의 공허함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그녀는 세상이라는 낚시터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익사시키려 했다.


놀란 장오는 다급히 강물 속에 뛰어들어 겨우 수현을 끌어내 다독이며 안정을 시켰고, 멍하니 낚싯줄을 드리운 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슬픔도, 후회도 없었다. 다만, 진실이 결국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음을 확인한 차가운 깨달음만이 자리 잡았다. 장오는 감았던 눈을 게슴츠레 뜨고 강 건너편의 도시, 그 거대한 거짓말이 만들어낸 불빛들을 차분히 관조하기 시작했다.


그때, 장오의 낚싯줄이 움직였다. 바늘 없는 줄이었지만, 무언가에 걸려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장오가 줄을 당기자, 낚시 줄에 감겨 물 위로 올라온 것은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간 낡은 인형 장난감이었다. 그것은 수현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과 같은 종류였다. ‘설마 하니 딸의 장난감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쓰레기통에 버린 지 수십 년이 지났으니...’ 장오는 젖은 인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수현이 조용히 말했다. "제가 다섯 살 때, 인형의 팔이 부러졌을 때 아버지는 '걱정 마라, 아빠가 밤새도록 고쳐주마'라고 하셨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인형의 팔은 감쪽같이 붙어 있었어요. 그건 완벽한 거짓말이었죠. 아버지는 새 인형을 사 왔으니까요. 부러진 팔은 결코 다시 붙지 않았으니까..."


장오는 숨을 멈췄다. "하지만 아버지, " 수현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결혼식 날의 환한 미소도, 고통에 찬 미소도 아닌, 차갑고 명확한 이해가 담긴 미소였다. "저는 아버지의 그 '거짓말' 덕분에 밤새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고, 여전히 그 따뜻함을 기억해요. 그 거짓말은 제게 가장 순수한 진실이었어요."


수현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낚싯대를 보았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문명은 고도의 사기극이에요.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달콤 쌉쌀한 합의된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 속에서 제가 남편과 함께 나누었던 사소한 웃음, 부모님께 드렸던 작은 감사의 마음, 심지어 절 고통스럽게 했던 분노와 눈물까지도... 그것들은 거짓말의 시스템 속에서 피어난 저의 진실한 감정들이었어요."

수현은 강물에 손을 담갔다.


"아버지는 '거짓말' 속에서 살지 않기 위해 결국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패배자처럼 관조라는 자포의 진실을 택하셨죠. 하지만 저는 이제 알아요. 이 거짓말 그 자체가 우리 인간의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간은 거짓을 통해서만 사랑하고, 협력하고, 고통받고,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논리적으로 모순된 진리 일망정 결국, 거짓이야말로 인간이 이룩한 문명에서 가장 따뜻하고 유일한 진실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제 불행의 시작점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후부터 이니까요..."


장오는 자신이 평생을 지켜왔던 '진실'이 사실은 인간의 본질적 따뜻함과 연결되는 '거짓말'이라는 역설을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몇 발 뒤로 물러서서 세상의 질서를 관조로 일관했던 그는 고고했지만, 고독했고, 허무했으며 게다가 사랑하는 딸의 작은 고통마저 덜어주지 못했다.


수현은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도회지로 돌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를 지속했고, 그리고 사회적 계층이라는 보이지 아니한 자명한 구속의 틀 안에 있었지만, 더 이상 자신이 이미 미끼를 물고 있는 상황에 처한 물고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미끼와 바늘이 공존하는 복잡하고 모순된 세상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감정들을 찾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희망을 묻었다. 불행의 단초는 막연히 바라는 것에 있었음을 스스로 알았기에...


오늘도 장오는 강가에 앉아 여전히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건만, 이제는 바늘에 미끼를 엮어 고기를 기다렸다. 그는 이제 도시의 불빛이 거대한 낚싯대가 아니라, 수많은 따뜻한 거짓말들이 피워 올린 희미한 불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오냐, 이 유의미한 행위는 징그러운 손맛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나역시 고통을 수반하는 순수한 포획이다. 장난처럼 잡았다 놔주는 치사한 취미가 아닌, 생존의 차원에서 비록 고기에게 사기를 칠망정, 내가 포획한 것들은 정중히 예를 갖추어 애도하고 내 스스로 먹을 것이다." / 끝.


존재의 이유가 없는 '우주가 사기'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을 위한 스토리는 많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는 어떠한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노니는 절대자유의 경지를 뜻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관조하며 생존할 수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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