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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Jun 20. 2023

굿 모닝, 도스토예프스키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제 수명을 다한 책표지는 변색되어 늙은이의 얼굴처럼 푸석하고, 장정본 이건만 귀퉁이마저 너덜너덜 해졌다. 책장을 넘겨 조사를 해보니 그나마 다행히 쪽수가 찢겨나가거나, 이가 빠져 달아나지는 아니한 1978년판 활자 인쇄본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락에서 발견하였을 때, 이것을 한번 더 숙독해야 하나 아니면 재활용 수거함에 과감히 버려야 하느냐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다가 몇 페이지를 파라락 넘겨보았다.  

  이 판본과는 다른 문고판 소설은 이미 십 대 후반에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는 소설이다. 미완의 낙오자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안타까운 기억을 반추해 보면, 당시 청소년 시절의 상식과 감성으로는 도무지 복잡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어 엄청난 인내를 요구해 오던 질렸던 소설인지라, 시간이 한참 지났건만 재구독에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특히,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나 지명, 인명 따위가 러시아어를 일본어로 1차 번역한 판본을 들여와 한글로 2차 번역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글 표기가 도저히 생소할 뿐만 아니라, 전개되는 인물관계의 묘사마저 지독히 낯설고 피곤했던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러시아인들이 이름을 짓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게 직업이건, 사물이건, 외양이건, 따지지 않고 그럭저럭 대충 가져다 붙인다는 점이다.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만 해도 그렇다. 러시어로 스키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고 도스토예프는 배달이라는 뜻이니 이름을 조립해서 합치고 보면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이름의 뜻은 '배달부' 내지는 '집배원'이 된다. 이건 그래도 고상한 축에 속하며 심지어 '난장이'나 '꺽다리' 따위의 이름도 있다.

  무려 45여 년이 훌쩍 지난 텍스트라서 한글 맞춤법도 지금과 달리 생소하다는 점이 새삼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였지만,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을 이해하기가 예나 지금이나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걸출한 작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개는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라고 대답한다. 물론 톨스토이나 헤밍웨이, 위고 등 허다한 대문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누리고 있는 문학적 위상을 추종할 만한 작가는 없는 것 같다.

  한국 작가들의 창작에 기여하여 얼마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느냐는 점에 있어서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독보적인 존재로 파악된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니체,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나 과학자들에게도 거대한 영향을 줄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한 작가라는 평단의 저울질도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어떤 과학자들보다도, 심지어 수학자 가우스보다도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 아인슈타인

  사상계는 물론이고 문학적 모더니즘, 실존주의, 그리고 심리학, 신학, 문학 비평의 다양한 학파들은 그의 아이디어에 의해 깊이 형성되어 왔다는 증거도 많은 편이다.

일리야 레핀작 "이반 뇌제, 아들을 죽이다" - 살인자 이반 뇌제의 마스크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닮아있다.

  이 소설의 내용은 전통적 지주 가문인 카라마조프 가문에서 벌어진 직계 존속살해 사건의 전개가 중대한 서사를 이루고 있지만, 냉정하게는 카라마조프 가문과 얽히고설킨 개개인의 인간적 탐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건의 중심인물은 아버지 표도르와 장남 드미트리이지만, 이 소설의 핵심 주제를 대표하는 인물은 차남 이반과 삼남 알렉세이다. 이반은 냉철한 지식인으로 철저하게 합리론을 신봉하며 '신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장한다. 이반이 언급했던 이 말은 동시대를 살았던 진보주의 지식인들의 사상을 대변하여 기존의 체제와 사상을 개혁하자는 의미로 사용하였음이 분명하다.

  

  그의 작품은 삶에 대한 사랑과 타인의 베풂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드라마틱한 실제의 죽음 체험과 수년간의 시베리아 유형 생활동안 섭렵한 성경이 그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며, 어릴 적부터 고통받는 사람들과 소통을 해온 경험으로 말미암아 인류에 대한 연민이라는 도스토옙스키 작품 특유의 감정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 그에게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해석될 수 있는 성결한 존재에 의한 구원에 대한 열망이 있었으며, 이는 그의 다른 작품인 '죄와 벌'의 소냐와 라스콜리니코프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비틀어 보거나 똑바로 보거나, 어느 집안이건 어느 가문이건 한 번쯤은 직접 겪었거나, 두어 번쯤은 부모로부터 들어봤음직한 작당과 야합의 리얼한 스토리를 탑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안에 오롯이 탑재되어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비록 45년 전의 맞춤법 이건만 나에게는 이러한 텍스트가 상당히 친숙하다. 그 시대에 그런 문법으로 살았고, 또 그렇게 통과의례를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잘자요! 도스토예프스키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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