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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Oct 27. 2022

슬픈 인연

소설연재

마크에게 연락했다.     


“지금 좀 만나고 싶어요. 급한 일이에요. 내가 집으로 갈게요.”

“OK. Hey..  괜찮은 거야? 목소리가 힘이 없네...”   

  

급하게 차를 몰고 마크의 집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마크의 모습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의 품에 털썩 안겼다. 마크는 깜짝 놀라 날 안고 소파에 눕혔다.    

 

“Baby, 무슨 일이야? 얼굴이 너무 창백해...”     


그의 손길이 얼굴에 닿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크, 놀라지 말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요. 당신이 사랑했던 제니가 나와 관계있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What do you mean? 현수와 제니가?”

“이번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갔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마크는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Oh... I'm sorry... 괜찮아?”

“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더 놀라운 건 나한테 쌍둥이 언니가 있다는 거예요.

그때 그 사진 속 제니의 모습을 보니 혹시 그녀가 내 쌍둥이 언니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네요.

내가 제니와 닮았다는 건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알잖아요.”     


마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No way... It can't be possible”     


마크는 충격을 받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제니와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항상 웃고 있지만 어딘지 슬퍼 보였던 제니였다. 그는 그런 제니를 살뜰히 보살펴주었다.      


“Mark... I can't live without you.. ”

“Don't worry. I will be by your side forever”

“Nothing in this world is forever”     

     

‘마크, 이제 날 보면 고통스럽겠네요... 어떻게 해요... 이제 우린’     


마크는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수... 미안...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너무 혼란스러워... let me alone...”

“알았어요... 나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사실을 확인해볼게요.. 생각이 정리되면 꼭 연락해줘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 역시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제니와 내가 자매라면 과연 마크와 계속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맞을까? 날 볼 때마다 제니가 떠오를 텐데... 닮은 사람과 쌍둥이 동생은 다른 이야기지...’     


그가 어떤 판단을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를 편하게 만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모든 게 변할까 봐 두려웠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6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청담대교를 지나며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와 다시 이 노을을 함께 볼 수 있을까?’   

  

가슴 깊이 차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머리가 어지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17개나 되었다. 내가 걱정되는 것이 당연하겠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괜찮으니 너무 맘 쓰지 마... 나도 이제 애가 아니잖아... 사실 너무 충격이긴 한데...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

“현수야... 엄마 아빠가 너무 미안해... 늦게 이야기해줘서... 사실 엄마 아빠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어... 넌 내가 나은 것처럼 키웠거든... 넌 내 친딸이야.... 너무 소중한 내 딸...”

“그래... 엄마... 고마워... 날 키워줘서... 엄마가 나 사랑해준 거 알고 있어.. 근데... 엄마 혹시 내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게 있어? 그리고 언니는 어느 나라로 입양되었는지도 알려줘. 꼭 알아야 할 게 있어서 그래...”

“그래 현수야...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은 안 나지만 서류에 정보가 있을 거야... 내가 알기론 너의 엄마는 미혼모였어... 그리고 니 쌍둥이 언니는 영국으로 갔다고 했어...”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제니는 영국으로 입양된 쌍둥이 언니인 게 분명했다. 다음날 휴가를 내고 엄마가 알려준 입양기관으로 찾아가 입양정보 청구를 하였다. 안타깝게도 친엄마는 자신의 정보제공을 동의하지 않았다. 너무나 화가 났지만 공개하지 않고 싶은 그녀의 맘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젊은 날의 치부가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가정을 이루고 다른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겠지. 입양정보기관의 도움을 얻어 제니가 입양된 집의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


제니의 엄마에게 Email을 보냈다. 나에 대한 소개를 한 후 이름이 제니인지와 어릴 때 자란 곳 옥스퍼드 MBA를 졸업했는지 등 문의했다. 며칠 뒤 그녀의 어머니에게 답장이 왔다. 나의 쌍둥이 언니의 이름은 제니 카터였다. 런던 근교에서 자랐고 옥스퍼드 MBA를 거쳐 영국 투자은행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3년 전 세상 떠났다는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간절히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난 그 뜻밖의 요청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마크와 나 그리고 제니 우린 슬프고 짓궂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그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그녀를 지우기 위해 그동안 그는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아픔을 다시 들춰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강태성... 그에 대한 원망이 이제 분노로 바뀌었다. 다시 얼굴을 보기 싫었지만 그를 만나야 했다. 그 모든 일의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다. 항상 만나던 카페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만나자고 했어”

“현수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는 내 눈치를 살피며 당황하는 눈치였다.     


“무슨 일?? 몰라서 물어?? 니 거짓말에 마크는 죽을 뻔했어... 이유는 알고 있지...? 난 진실이 뭔지 알고 싶어... 그리고 무엇보다... 제니가 죽고 나서 어떻게 나를 만날 수가 있어? 내가 제니와 쌍둥이인걸 알고 있었어? 그때 공항에서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였어? 만약 알고 그런 거라면 넌 사이코야...”

“그래... 가 쌍둥이인걸 알고 있었어... 제니가 한번 너에 대해 이야기했었거든... 한국에 동생이 있을지 모른다고... 찾고 싶다고...”


그는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니가 죽고 나서 나도 힘들었어. 나도 감정이 있어... 그런데 그날 공항에서 널 봤을 때 정말 놀랐어... 사실 비행기 좌석은 내가 일부러 네 옆자리로 바꾼 거였어. 네가 너무 신기했거든... 마치 제니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았어... ”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너무 소름이 끼쳤다. 제니의 죽음 때문에 힘들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호기심에 나에게 접근한 거였다. 날 사랑하기는 했던 걸까?     

 

“왜 제니를 마크에게서 빼앗어 갔어?”   

  

난 그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다 마크를 위해서야... 나중에 제니는 마크에게 방해만 되었을걸... 그 집안에서 아시아계 입양아인 제니를 받아 줄 것 같아? 영국 사회는 은근히 보수적이야... 아직 계급이 존재한다고...”


“그럼 제니를 왜 버렸어... 그렇게 뺏어 갔으면 끝까지 함께 했어야지...”


“제니는 너무 의존적이었어. 귀찮을 만큼...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줘도 강아지처럼 졸졸졸... 처음엔 마크에게 그다음은 나에게... 제니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 사실 난 믿지 않았어... 날 붙잡으려고 꾸민 말이라고 생각했거든... ”     


찰싹!

나의 언니, 제니에 대한 모욕에 대한 대가였다. 마음속 깊이 모멸감을 느꼈다.     


“넌 사람이 아냐... 짐승만도 못해...! 세라가 정말 불쌍하다...”

     

강태성은 뺨을 어루만지며 황당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그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놀랍게도 문밖에 세라가 벌벌 떨며 서있었다.     


“세... 세라야...”

“현... 수야... 니오빠와 무슨 일로 만난 거야?  ”  

   

난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차에 태웠다. 그때 강태성이 화난 얼굴로 다가왔다.     


“차문 열어! 빨리!”


강태성은 무섭게 소리치며 창문을 두드렸다. 난 재빨리 차를 몰아 그곳을 벗어났다.     


“현수야... 왜 그래... 무서워...”

“세라야... 너에게 할 말이 아주 많아... 근데 너 어떻게 그 카페에 오게 된 거야?”

“....”

“무슨 일 있는 거야?”

“사실 나 오빠에게 미행을 붙였어... 오빠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아서... 양복에서 자꾸 여자 향수 냄새가 나고 셔츠에도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던 적이 몇 번 있었어... 오늘은 직접 와봤는데... 니 있어서 놀랐어”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 나와 만날 때도 강태성은 늘 나 말고 누군가가 있는 눈치였다. 낯선 여자의 향수 냄새... 나와 데이트를 할 때도 나가서 받는 전화가 많았다. 핸드폰은 절대 보지 못하게 했다.     


“세라야 내가 강태성 믿지 말라고 했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그때였다. 뒤에서부터 온 갑작스러운 강한 충격으로 차가 도로 밖으로 미끄러져 가드레일에 부딪혔다. 앞유리가 산산조각 나고 에어백이 터졌다.  

  

아악!”

“세라야... 괜찮아?.. 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뒤차의 운전석에 강태성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차로 내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세라는 정신을 잃은 채 옆에 쓰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차가 부서지면서 돌출된 플라스틱 조각의 한 부분이 세라의 배를 찌르고 있어 출혈이 심했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도착했다. 강태성도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실려갔다. 난 의식이 있었지만 세라는 의식이 희미했다. 배 부위에서 피가 계속 솟구쳤다...  

   

“우리 아기.. 우리 아기 어떻게 해...”


세라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아기라고?.... 아... 세상에... 세라야... 어쩌면 좋니....’

    

슬픔과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 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엄마 아빠 언니가 나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큰 충격으로 의식을 잃었지만 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만 입었다.


“엄마... 세라는 어때? 아기는? ”

“세라는 지금 수술 중이야... 안타깝게도 아기는 구하지 못했나 봐”     


눈물이 흘렀다. 세라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아기였을까? 엄마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내다니... 강태성은 알고 있긴 한지?     


그때였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마크가 병실로 들어왔다.  

   

“Oh... God! 현수... Are you ok? 어떻게 된 거야!?”

    

오랜만이었다. 며칠 동안 전화도 문자도 없었다. 걱정하는 눈빛의 그의 얼굴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 무서웠어. 마크... 강태성이 뒤에서 차로 내차를 부딪혔어... 난 괜찮은데 친구가 많이 다쳤어...!”

“shh... calm down... you need a rest”     


그는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주었다. 머리를 만져주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마크는 그렇게 한동안 내 옆에 머물러주었다. 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다음날 세라가 걱정이 되어 그녀의 병실로 갔다. 병실에는 세라의 부모님이 와계셨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그녀는 눈을 뜨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기가 잘못된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현수야... 아기가 날 떠났어... 내가 나쁜 엄마여서 그런가 봐... 너에게서 그 사람 뺏어와서...”

“그런 생각하지 마... 지금은 네가 안정하는 게 중요해... 힘내 세라야...”     


위로는 건넸지만 그녀의 슬픔을 가늠할 수는 없었다. 날 낳아준 엄마도 그녀처럼 우리와 헤어졌을 때 슬펐을까? 진짜 엄마라면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세라야... 가 이렇게 슬퍼하는 걸 보면 넌 분명 좋은 엄마야...’     


세라와 나 강태성, 마크 그리고 제니 우리는 실타래처럼 얽힌 슬픈 인연으로 묶여 있었다. 이제 그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야 한다. 누구의 도움도 아닌 나 스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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