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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Oct 27. 2022

잠시, 이별

소설연재

강태성은 살인미수로 구속되었다. 그토록 이성적이던 그가 이성을 잃고 내차에 부딪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무엇을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걸까? 옥스퍼드 출신의 엘리트인 그가 그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모든 게 그의 헛된 욕심 때문이었다. 한때 사랑했던 그에게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를 사랑하는 세라가 가여웠다. 난 2주 뒤 퇴원을 하고 회사로 출근했다. 그동안 밀린 일들이 많아 정신이 없었다.


“정말 스펙터클 하네... 현수씨는... 무단결근에 교통사고에... 다음엔 뭔지 아주 기대돼... 이번에 퇴사하는 지훈 씨 백업이랑 신입사원 멘토 역할도 현수 대리가 맡아줘요!... 그동안 팀에 피해 준거 생각하면 설마.. 불만이 없겠지...”     


그 후 팀장은 나를 더욱 노골적으로 괴롭혔다. 나와 관련 없는 업무까지 나에게 떠넘겼다. 팀장이 나를 대놓고 무시하자 팀원들까지 팀장을 통해 나에게 일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건 사실이기에 난 어쩔 수 없이 묵묵히 견뎌 내는 중이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동정을 바란다는 건 사치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늘어난 업무에 허덕이며 정신없이 처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무스크향이 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최 전무였다.     


“요새 현수 대리 때문에 우리 오윤희가 고생이 많겠네?”

“어머 전무님 ~  어쩐 일 이세용 ~”

“우리 오윤희 팀장 응원하러 왔지...”

“어머... 전무님도 참... 너무 감사해요...”     


최 전무가 팀장의 어깨를 살짝 누르고 지나갔다.

팀장은 전무가 떠난 뒤 눈치를 보며 자리를 비웠다.

    

“둘이 뭐야... 으 역겨워...”     


팀원들이 속닥거렸다.오윤희 팀장이 승진이 빠르다는 소문은 전부터 파다했다. 그 배후에 최 전무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그전에는 김 전무와의 소문도 있었다. 최 전무가 김 전무를 밀어내자 팀장도 이내 김 전무를 멀리하고 최 전무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회사는 늘 소문이 많은 곳이다. 난 거기에 휘말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서로의 험담에 끼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그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미 마크 때문에 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돌고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마크는 평범한 남자는 아니니까...  

   

자리에 돌아온 팀장에 몸에서 무스크향이 살짝 났다. 향기에 민감한 나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저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마크와는 병문안 이후 줄곧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무척 바쁜 듯했다. 전화통화를 하긴 했지만 안부를 묻는 짧은 통화였다. 하지만 바쁜 것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과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연인들만이 알 수 있는 미세한 균열이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 마크에게 전화해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마크... 오늘 당신 집으로 갈게요... 시간 좀 내줘요...”     


오래간만에 만난 마크는 무척 피곤한 모습이었다.


“바쁜데 내가 괜히 시간 뺏은 거 아니죠?”

“That's OK... 그런데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

“음... 내가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요즘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What do you mean? 내 마음이 변한 것 같다는 뜻이야?”     


그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느낌이 그래요.”     


마크는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의 비친 그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네가 나보다 날 더 잘 아는 것 같네... 현수 말이 맞아... 나 사실 요즘 마음이 너무 힘들어... 제니와 네가 쌍둥이 자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솔직히 널 편하게 만나는 게 쉽지 않아... 널 보면 제니가 떠올라.. 정말 미안해...”     


그는 괴로운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God!  널 만질 때마다... 너와 키스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어... 나도 왜 이런지 모르겠어... Damn it”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우려했던 부분이 그의 고백을 통해 현실이 되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내 눈을 피했다. 긴 침묵 끝에 난 그를 위해 용기 내어 말했다.     


“마크, 난 제니를 한 번도 못 봤지만... 제니와 많은 추억이 있는 당신은 괴로울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냥 닮은 사람과 친자매는 정말 큰 차이니까요...

이해해요.. 마크... 우리 잠시... 시간을 갖어요... 그걸 극복할 수 없다면 제니의 존재는 우리를 영원히 고통 속에 가둘 거예요... 생각이 정리되면 연락해줘요...”     

 

난 반지를 빼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가 흐느끼는 것을 알았지만 난 매몰차게 그의 집을 나왔다. 그를 위해서 그래야만 했다... 가슴에 불이 붙은 것처럼 쓰렸다. 막상 집을 나오고 나니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향기가 점점 옅어져 갔다.

이제 더 이상 기억나지 않을까 봐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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