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빛창가 Oct 27. 2022

오윤희 팀장

소설연재

복잡한 마음을 안고 다음날 회사를 가니 인사발령이 나왔다. 상무로 승진한 팀장들의 명단이 사내 게시판에 떴다. 그런데 당연히 상무로 승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오윤희 팀장의 이름이 없었다.


“대박... 오윤희가 낙마했네... 대이변이야...!!!”


팀원들은 당황하며 웅성 거렸다. 다들 그녀가 이번에 상무가 되리라 예상했다. 최 전무의 전폭적인 지지로 회사에서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도맡아 성공했던 터였다.

 

팀장은 출근하자마자 자리를 비운 듯했다. 그녀의 샤넬백만이 책상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오전 10시에 보고가 잡혀있었기 때문에 9시 50분이 되자 나는 프로젝트 관련 보고를 위해 보고서를 들고 최 전무 방으로 향했다. 비서가 날 보며 당황한 듯 눈짓을 했다. 안에서는 남녀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만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

“왜 이래, 사람들 다 듣는데... 미쳤어? ”

“그래 미쳤다!... 참... 내가 순진했지... 난 도저히 그냥 못 넘어가...”     


팀장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난 그녀의 눈에 띄지 않게 문 뒤에 재빨리 숨었다.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난 그 일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한 여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씁쓸한 마음만은  감출 수 없었다.   


다음날 출근길에 회사 로비가 시끄러웠다.

한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오윤희 어딨어.... 이 나쁜 년...! 당장 나와!”     


회사 보안팀 직원이 급하게 오윤희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은 헐레벌떡 달려와 그녀를 마주했다.

     

“네가 그 잘난 오윤희야? 네가 감히 내 남편을 꼬셔?”


그녀는 최 전무의 와이프였다.     


찰싹!

주위의 모든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팀장은 뺨을 어루만지며 수치심에 눈을 내리 깔았다. 그러나 상대가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걸 보자 그녀는 더욱 격앙되었다. 그녀는 팀장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버러지 같은 년... 걸레같이... 더러워...”     


블라우스가 찢어지고 머리는 헝글어진채 팀장은 오열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최 전무의 와이프는 회사 보안직원에 의해 끌려나갔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에겐 매일 아침 똑같은 일상에 모처럼 일어난 하나의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듯 서로 웃으며 속닥거렸다. 분명 최 전무와 그의 부인, 그리고 팀장을 조롱하는 말들이겠지...     


아이러니하게도 난 팀장이 걱정되었다. 그녀가 지금 느끼는 기분은 그녀가 그동안 나에게 주었던 모멸감과 같은 것이리라...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받지 않았다. 10번의 통화시도 후, 난 그녀에게 시간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 전화는 더 받기 싫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퇴근시간이 되자 팀원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들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다들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난 이성적인 그녀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일이 되면 새로운 명품백과 힐을 신고 향수로 무장한 채 뻔뻔한 표정으로 웃으며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음날 그녀는 근처 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저체온증에 의한 동사’였다.     


‘이 날씨에 얼어 죽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천천히 죽어가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팀원들은 독한 여자라고 비웃었다. 차라리 목을 매 거나 뛰어내리는 게 낫다고도 했다.     


“야! 너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한 여자가 죽었어...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든... 이제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  

   

난 모두를 향해 울면서 소리쳤다. 모두들 아무 향기도 없고 심장도 없는 양철 인간들 같았다.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다들 황당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무거운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갔다. 빈소엔 그녀의 남편이 슬픈 얼굴로 조문객을 맞았다.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영정사진을 보니 그녀의 부재가 실감이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 옆에는 한 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얼굴 한쪽이 일그러져 있고 몸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한눈에 봐도 장애가 있는 듯했다. 그 순간 그녀가 왜 그런 방법을 쓰면서까지 승진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에겐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임원이 되면 연봉이 훨씬 높아지고 혜택도 많아지기 때문에 그녀의 아픈 아이를 돌보기에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도 결국 엄마였다. 비록 잘못된 방법을 선택했지만...혼자 외로이 죽어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아이를 생각했을 것이다... 더욱 그녀가 측은해졌다.     


회사로 돌아와 그녀의 유품을 정리했다. 카디건과 스카프, 가방에 그녀에 향기가 묻어 있었다. 팀원들은 팀장이 가장 싫어했던 내가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나도 내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바보라서 그런 것 같다... 바보라서...


그 일이 있은지 한 주가 지나고 새로운 남자 팀장이 그 자리로 왔다. 그녀가 없이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런 불미스러운 사건 후에도 최 전무의 입지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했다. 그녀의 향기가 더욱 생각나는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잠시, 이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