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빛창가 Oct 27. 2022

뜻밖의 비밀

소설연재

“현수야, 엄마야... 요즘 별일 없어?

요즘 네가 자꾸 꿈에 나오는데 무슨 일 있나 해서... 그 사람은 이제 많이 좋아졌니?”

“응 엄마... 벌써 퇴원했어...”

“그렇구나... 다행이다... 언제 집에 한번와..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네 언니도 오랜만에 보고”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서 생각해보니 마크와 연애를 하느라 집에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주말에

오랜만에 집으로 갔다. 이미 언니가 와있었다.     


“야... 지현수... 넌 연애하더니 어째 연락한 통 없어... 얼굴 보기 힘드네 정말... 남자가 그렇게 좋니?”

      

언니는 투덜대며 말했다.      


“바쁜 건 언니 아냐? 전화하면 맨날 바쁘다고 끊으면서!”     


언니는 내과 전문의다. 아이큐 158에 멘사 회원, 국내 최고의 대학 세원대 출신이다. 애인 빼고는 다 가진 여자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모태솔로이다.     


“너희는 어째 만나기만 하면 싸우니... 그만하고 빨리 와서 밥 먹자...”


“우리 강아지들 왔니?”


방에서 아빠가 나오며 우리를 반겼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아빠... 어디 아파? 왜 그래... ”

“네 아빠 또 주식으로 몇백 날렸다... 돈만 생겼다 하면 없애는 재주가 있어.”     


엄마는 아빠를 쏘아보며 말했다.     


“어휴... 친구가 이번엔 확실하다고 했단 말이야...”   

  

아빠는 엄마 눈치를 보며 식탁에 앉았다. 고개 숙인 아빠가 불쌍해 보였다. 이제 아빠도 많이 늙으신 게 보인다. 예전엔 이럴 때 큰소리치셨는데....     


“아빠... 이제 저희도 돈 벌고 하니깐 아빠는 쉬셔도 되잖아요...

주식투자도 좋지만 아빠 스트레스받는 거 싫어요.”

“아유 우리 공주님, 너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구나... ”   

  

오랜만에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니 행복했다. 우리 네 식구 이렇게 오붓하게 먹은 게 얼마만인지...엄마는 동네 빵집을 운영하며 우리를 키우셨다. 아빠는 허구한 날 사업한다고 주식한다고 돈을 날렸다. 엄마는 그걸 다 수습하느라 고생이 심했다. 그러나 아빠에게 미움이 클법한데도 엄마는 항상 아빠를 감싸 안았다. 사고 치는 것만 제외하면 아빠는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참 따뜻하고 가정적인 남자였기 때문인 것 같다. 아빠도 우리 가족을 위해 잘해보려고 했다는 것을 우린 다 알고 있었다.   

  

“아빠가 사죄의 의미로 설거지할게 ~ 여보 용서해줘...”

“설거지 가지고 퉁치려고...? 절대 안 돼!! ”     


오랜만에 내 방에 들어가 보았다. 촌스런 도트무늬 커튼... 낡은 옷장, 책상, 연예인 사진들 그리고 많은 책들.... 아직도 예전에 내가 쓰던 그대로 바뀐 게 없었다. 서랍을 열어보니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이 있었다.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보다 한 일기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9월 27일      

 매일 내 꿈에 한 여자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지만 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슬픈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그 아이는 누구일까?  

   

맞아...10살 때쯤 한 여자애 꿈을 매일 꿨었지...잠시 잊고 있었네...아직까지 기억나는 걸 보면 그 당시에도 꽤 생생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마크를 처음 만나던 즈음에도 한 여자의 꿈을 계속 꿨었다. 어렸을 때는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는데 그때는 성인 여자의 모습이었다. 미스터리한 일이다...     


“엄마, 나 오늘 자고 갈까 봐... 오랜만에 내 방에서 자고 싶어...

언니도 같이 자고 가 ~”

“OK... 그래 알았어... 오랜만에 나도 집에서 자고 싶다.”    

 

엄마 아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딸들의 온기를 느낀 것이 몇 년만인가... 아빠는 괜히 쓸데없이 방을 몇 번씩 들락날락하며 필요한 건 없는지 살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 잠이 들려할 때였다. 잠결에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엄마가 울면서 이야기했다.     


“그때 현수를 데려오지 말았어야 해... 부잣집에 갔으면 공주처럼 살았을 텐데...

능력도 안 되는 데 왜 데려와서 이렇게 고생을 시킨 거야... 애 얼굴 봤어? 반쪽이 됐어 반쪽이...”

“쉿.. 조용히 해!... 현수 들어... 우리가 물질적인 건 부족해도 사랑은 많이 해줬잖아...!!”

“사랑하면 뭐해? 돈 없으면 소용없어. 현수가 발레를 하고 싶어 하는데 밀어주지도 못하고 아직도 너무 속상해.”     


그 이후의 말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진공관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난 너무 놀라 안방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울면서 물었다.    

 

“엄마 이게 다 무슨 말이야? 데려왔다니... 나 입양했어? 엄마 아빠가 내 친부모가 아니란 말이야?!

“어머... 현수야... 어쩌면 좋아... 여보 어떻게 해...”     


엄마는 당황한 눈빛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현수와 이리 와 봐... 아빠랑 이야기 좀 하자...”     


언니도 큰 소리에 잠에서 깨어 울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는 날 옆에 앉히고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현수 많이 놀랬지... 엄마 아빠가 너에게 미리 이야기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현수야 엄마 아빠가 니 친부모는 아니지만 너를 너무 사랑하는 것만은 사실이야... 믿어줘... 니가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마... 영원히 숨길 수는 없는 일이구나. 윤수를 낳고 우리는 둘째를 낳으려고 고민했었어. 네 언니가 자꾸 동생을 시장에서 사 오라고 졸랐거든... 우리는 고민을 하다가 아이를 더 낳지 않고 입양을 하기로 했어. 네 엄마가 몸이 약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결혼 전에 입양에 대해서 이야기한 일이 있었거든. 자식 중에 꼭 한 명은 입양을 해서 키우자고. 그 후 입양 대기를 걸어놓고 가슴 졸이면서 아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칠 때쯤 연락을 받았어. 쌍둥이 여자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난 반대했어. 두 명을 입양하기엔 당시 우리 집이 너무 형편이 어려웠거든. 하지만 우리가 망설이는 사이 서류상 실수로 니 쌍둥이 언니는 먼 나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단다. 그 후 그렇게 홀로 남겨진 너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우리는 너를 기쁨으로 데려오기로 했어. 널 처음 본 순간 엄마와 아빠는 한눈에 알았어. 넌 우리 딸이라는 걸... 그 후 엄마 아빠는 너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     


내가 입양아라니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쌍둥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연신 헛구역질이 났다.     


“여보, 현수 어떻게 해... 불쌍한 우리 딸...”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우리 집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난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가슴 깊은 곳부터 밀려오는 외로움에 고통스러웠다. 세상은 이미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사막가운데 혼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였다. 불현듯 사진 속 그녀가 떠올랐다. 마크와 강태성과 함께 있던 그 여자... 분명 나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제니라고 했었지? 이름이...’

작가의 이전글 드러난 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