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없었던 기적의 야채수프

끝이 보이는 3개월간의 밥상

by 보라빛창가

두 번째 항암제(주사제)로 바꾼 후 이제는 집에서 통원을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원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아직 복수가 나오기 때문에 매번 복수를 일정하게 체크해서 빼내고 소독하고 해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면서 엄마를 돌볼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그동안은 간병인의 도움을 받았었다.)


"네가 그런걸 어떻게 해... 힘들어서 못해.. 요양병원을 갈래.."


엄마는 내가 힘들어서 안된다며 요양병원으로 가겠다고 하셨지만 내심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병원 생활이 지겨울 법도 했다. 하지만 결국 언니와 논의 끝에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복수 관리뿐 아니라 위급사항이 생기는 경우 내가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집에서 가까운 요양병원을 찾아보았다. 마침 새로 생기고 깨끗한 곳이 있어 자리가 나면 바로 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운명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퇴원 전날 검사에서 VRE 균이 발견되어 엄마는 격리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물론 퇴원도 물 건너갔다.

VRE란 반코마이신 내성균으로 반코마이신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균이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없지만 면역력이 약한 환자에게는 치명적이어서 병원에서 격리 치료되고 보호자도 보호복을 입고 환자를 만날 수 있다. 문제는 간병인을 구하는 것이었다. 격리병실에 있는 환자는 간병인도 꺼려하는 게 현실이었다. 다행히 옆 침대 간병인분의 소개로 한 조선족 아주머니를 만났다. 간병비용도 일반병실보다는 더 비쌌다. 하지만 내가 집에 가있는 동안 엄마를 돌봐줄 사람이기 때문에 와주신 것 만으로 감사했다. 이렇게 기약 없는 격리병실 생활이 시작되었다.


병원을 나가는지 알고 기대했던 엄마는 격리실 생활을 유난히 힘들어했다. 이런저런 음식을 마련해 갔지만 한 숟가락 겨우 뜨는 정도였다. 새로오신 간병인 아주머니는 조선족 분이셨다. 한국인 중에는 격리병실 간병인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간병인 아주머니는 참 좋은 분이셨다. 엄마 때문에 예민해진 내 요구사항을 불만 없이 들어주셨다. 엄마를 진심으로 돌봐주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조선족에 대한 편협한 생각이 다 사라졌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날 조용히 불렀다.


"따님에겐 속상한 이야기겠지만 복수가 이리차면 오래 못가셔...맘에 준비를 해야해..."


그 이야기가 사실이란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엄마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가 더 이상 음식을 먹지 못한 지 며칠이 지나자 조급함이 밀려왔다.

수많은 사이트와 카페를 뒤지기 시작했다.

암환자 가족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그 절박함을....

카페에서 기적의 야채 스프라는 것을 찾았다. 꾸준히 먹고 완쾌했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레시피대로 재료를 사고 꼭 유리로 된 냄비를 이용해야 한다고 해서 냄비도 새로 샀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재료를 씻고 자르고 정확한 비율로 재료를 준비한 후 정성껏 우려내어 병원으로 가져갔다.


"엄마 이게 기적의 야채 스프래. 효과 본 사람도 있다고 하니깐 먹어보자."
"뭘 이런 걸 했어.... 너 힘들게..."


엄마는 한 컵을 다 드셨다.

말 그대로 기적의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날 엄마는 설사를 하셨다고 한다.

빈속에 갑자기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드셔서 그런 것 같았다.

괜히 나 때문에 엄마가 고생한 것 같아 미안했다.


아침 회진시간에 보호자가 꼭 참석하라고 병원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남편에게 아이들 등원을 맡기고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조금 뒤에 담당의가 나를 불러냈다.

PC 화면을 가리키며 CT 사진을 보여주었다.

엄마의 상태가 많이 나쁘다고 했다.

의학을 모르는 내가 봐도 암덩어리가 온몸에 퍼져있었다.

격리조치가 되며 몸이 너무 쇠약해져 항암제 치료를 멈춘 상태라 더 악화되었던 것 같다.


'왜 우리 엄마는 하필 나쁜 케이스마다 다 해당된 걸까... '

온 우주가 엄마의 죽음을 바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얼마 뒤부터 엄마의 소변이 줄어들고 다리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소변 배출을 도와준다는 옥수수 수염차를 끓여서 갔다.

엄마는 한 컵을 꼭 드셨다.

소변이 늘어난 것 같다는 이야기에 기쁨이 밀려왔다.


환자의 가족은 환자의 작은 변화에도 일희일비한다.

그건 아마도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온 신경세포가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어느새 언니와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엄마의 상태가 안 좋고 아무래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당신의 삶을 정리해야 할 시간을 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엄마는 먼 창밖을 바라보셨다.

예쁜 꽃들이 천지에 가득했다.

긴 침묵 끝에 엄마는 이제 병원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이제 더 이상 엄마에게 음식을 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서러워서 엄마를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엄마 앞에서 절대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


하고 엄마가 나지막이 흐느꼈다.

처음이었다...

나의 엄마가 자신의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엄마도 힘들 때 자기 엄마가 생각나는구나...

엄마를 이대로 놓기 싫었다.

기적이 있기를 기도했다.

keyword
이전 06화정성 담긴 아바이 순대와 유기농 수제 호박식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