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과 반응
이틀 전 어느 피부과 의사가 말하길 욕실에 있는 때수건을 전부 버려라 하는 내용을 보고 의문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지론은 피부에는 각질 층이 있어 보호를 해 주는데 때를 밀면 그 각질층이 떨어져 나가 피부의 저항력이 약화된다는 것이 요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생체는 용불용설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지요.
메기나 뱀장어처럼 굴에 사는 어류는 비늘이 없고 피부가 매끄러워 좁은 굴에서의 이동에 유리합니다.
하지만 붕어,피라루크처럼 드러난 곳에서 생활하는 어류는 딱딱한 비늘로 피부를 보호하고 참치처럼 고속으로 헤엄치는 어류는 물의 저항을 적게 받게 피부가 진화해 왔습니다.
인간의 피부는 다른 동물과는 차이점이 땀을 분비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마처럼 일부 동물에서도 그 기능이 있지만 이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피부의 표피증을 뚫고 배출되는 땀구멍은 땀을 배출하여 체온조절, 냄새(호르몬)의 발산 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만약에 때가 심해서 땀구멍을 막으면 땀과 피지가 배출되지 못하고 여드름 같은 피부 트러블을 유발합니다.
무술인 중에는 정권 수련 등으로 손을 단련하여 피부가 찢어져 피가 나기도 하였지만 수련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튼튼한 악력과 피부를 가지게 됨을 봅니다.
표피층이 박탈되면 피부가 건조해진다는 마인드는 마치 외출하면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니 무균 청정한 실내에만 거주하라고 강제함과 같습니다.
때가 피부에서 그 존재감을 드리울 때 우리 몸은 이미 가려움증이나 답답한 증상으로 때수건으로 그곳을 긁어 달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붙잡혀 강제적으로 등을 밀릴 때 국수 가락처럼 떨어지는 때를 보면 약간의 피부 쓰라림보다 더 큰 희열을 느껴본 적이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존재에 긍정적 이유가 있다면, 때에 대한 무의식적 인식에서 호감으로 작용해야 하고, 몸 또한 그것의 존재에 편안함이나 아끼려는 의도가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때를 더럽게 여기고 무의식적인 혐오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위생에 있어 부정적으로 작용해 왔음을 직감적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병적일 정도로 하루에 몇 번씩이나 때수건을 사용하지 않는 한 피부 각질층은 쉽게 다 탈락하지 않습니다.
사실 각질층을 헤치는 가장 큰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피부 질환에서 잘못된 치료는 피부를 건조하게 하여 각질층이 누룽지처럼 탈락하게 하여 긁기만 해도 피가 흐르는 아토피 같은 경우에서 쉽게 관찰됩니다.
공중 목욕탕에 앉아서 때수건으로 모처럼 박박 때를 밀 때의 희열을 전문가의 단견(短見)과 바꿀 수 있을까요?
인체는 이기적이어서 때를 미는 것이 해가 된다면 샤워나 목욕 문화를 싫어하게 하는 것이 순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