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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선사 Jun 20.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season5(13.이색이상분2)

색(色)과 상(相)을 떠나야 법신(法身)과 조우할 수 있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가이구족제상 견부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可以具足諸相 見不)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제상 견

(不也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諸相 見)


하이고 여래설 제상구족 즉비구족 시명제상구족

(何以故 如來說 諸相具足 卽非具足 是名諸相具足)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가히 모든 상이 구족한 것으로써 불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모든 상이 구족한 것으로써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모든 상의 구족함은 곧 구족이 아니고 그 이름이 모든 상의 구족함이기 때문입니다.


색신(色身)은 모습을 중심으로 하는 의미가 강조된 용어이고, 상(相)은 사상(四相)에서 봤듯이 색신에 따른 다양한 중생들의 영적, 정신적 인식과 욕망을 중심으로 강조하는 용어일 뿐,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법신(法身)이 아니고 실체(實體)도 아니고 실상(實相)도 아닌 것이니까.

우리가 여래의 법신을 생각하고 또한 동시에 나 자신의 법신을 생각한다지만, 사실상 현실의 모든 자기 자신의 인식(認識)과 행(行)은 철저하게 상(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색(色)을 떠나고 상(相)을 떠나야 법신(法身)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라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 성립된다.


이색이상(離色離相)된 나의 실체를 곧 공(空)이라고 이름 붙이고, 자비(慈悲)는 공(空)의 실천이 되는 것이 여래의 법신이다.


공(空)의 실체에서 나온 자비행(慈悲行)이므로 모든 행은 묘행(妙行)이 되고, 공(空)에는 일체 머무는 것이 없으므로 무주상(無住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색(色)을 떠나고 상(相)을 떠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우선 가장 큰 고통이 당장 다가온다. 그것은 바로 고독이라는 것이다.

고독은 여래와 떨어져 색상(色相)으로 지내는 모든 중생들에게 죽음과 더불어 양대 숙명(宿命)이 되어 있는데, 아직 법신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그나마 자기의 고독을 살짝 덮어주고 가려주고 있던 모든 인연들과 점차로 멀어지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고독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주 상근기자(上根機者)가 아니면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완전히 단절된 그 고독을 참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사실 도반(道伴)도 찾고 신도(信徒)라는 이름의 사람도 찾고 출세간에서 또 다른 인연들을 찾아 헤매게 된다. 그러다가 그만 그 인연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세월을 흘려보낸다. 나중에는 자기가 한량인지 수행자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둘 다 겉모습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 수행은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의 고독과의 처절한 싸움이 된다.


그런데 그 고독은 우주적인 힘을 갖고 있으므로 대부분 여기서 나가떨어지고 만다.


자기가 모든 복을 구족하고 있고 모든 상(相)을 다 구족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1라운드는 고독과의 싸움인데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큰 고독이 다가오게 된다.


그나마 고독을 겨우 견디고 다스릴 수 있게 되면, 그다음에는 2라운드로 생명체의 가장 원초적 본능인 말 그대로 색(色)이 등장한다.


이른바 윤회(輪廻)를 면치못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인 색욕(色慾)인 것이다.


고통과의 투쟁에서 살아남은 수행자는 여기서 또 대부분 나가떨어진다.


오죽 이 욕망을 이기기 어려웠으면 부처님께서 아예 계율(戒律)로 정해버렸을까.

어기면 파문(破門)이고 성불할 수 없다면서 무서운 겁을 주면서까지 말이다.

사실 부처님이 처음에 여성들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아니한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남성 제자들이 홀로 지내면서 수행을 하는데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간을 갈라놓아도 별 소용없다. 발이 있고 냄새가 흘러나오게 되면 저절로 색상(色相)에 끌려간다.


우리가 탐진치(貪瞋痴)라는 삼독심 때문에 윤회한다고 하지만, 그 핵심은 바로 고독(孤獨)과 색욕(色慾)인 것이다.


돈 욕심과 권력욕, 그리고 심지어 명예욕가지 다 버리고, 분노심을 다 버리고, 지혜가 있더라도 이 둘을 이기기 어려운, 상(相)을 떠나는 가장 큰 관문인 것이다.


고독을 자기 힘으로 승화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시켰을 때 비로소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되어가면서 자비심(慈悲心)이 형성되며, 색욕을 자기 힘으로 승화시켰을 때 비로소 대자유(大自由)가 이루어져 간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가는 자기 자신마저 동시에 버려갈 때, 시방삼세의 모든 여래의 진정한 법신(法身)을 보게 되는 기본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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