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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선사 Jun 19.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season5(12.이색이상분1)

여래를 그리워할수록 사실은 그 속에 나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불 가이구족색신 견부

(須菩提 於意云何 佛 可以具足色身 見不)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색신 견

(不也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色身 見)


하이고 여래설 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

(何以故 如來說 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를 가히 구족한 색신으로써 볼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구족한 색신으로써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구족한 색신은 곧 구족한 색신이 아니고 그 이름이 구족한 색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여전히 그 영혼과 같이 지내고 있건만, 남아있는 사진이나 기타 유품을 통해 그 영혼의 체취를 느끼고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간다.

무엇을 통해서 도대체 떠난 사람을 만나볼 수 있겠는가?


색신(色身)이 소멸하였으므로 무엇을 통해서 살았을 때의 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영혼이 가끔 살아있을 때의 몸을 만들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실제 그 몸은 이제 살아있을 때의 그 모습이 아닌 것이다. 


색신(色身)은 결국 소멸하고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니 그 사람의 진실된 실체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살아있을 때의 그 영혼이 그래도 그 존재의 주체라고 봐야 더 정확한 것이다.


그런데 살아있을 때의 그 영혼을 보지 못하니 결국 우리는 세월을 따라 변해가는 그 겉모습을 쫓아 우리의 의식도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영혼조차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그 존재 전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니 여기에 바로 색신(色身)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여래의 색신(色身)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구족해 있다고 하지만 색신은 색신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여래의 그런 색신을 여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래를 그리워하고 찾으므로 색신의 형상이나마 조성하여 모시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찾는 것은 여래의 법신(法身)인 것이다.


그래서 색신(色身)을 통하여 여래를 잊지 않고 늘 법신(法身)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중생들은 자칫 색신을 여래라고 착각하기 쉬우므로 그렇지 않다고 가르쳐주신다.


그러면 여래의 법신(法身)을 왜 그렇게 2,500년이 지나도록, 아니 영원토록 찾고 모시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법신(法身)을 그리워하고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찾는 것은 저 바깥의 부처가 아니라 나 자신의 본래부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나 자신의 본래부처의 모습을 이미 구족하고 있고, 또 나도 모르게 나의 그런 본래모습과 영원히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이 바로 여래의 법신이므로 여래를 그리워할수록 사실은 그 속에 나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을 그리워할수록 여래를 그리워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구족한 여래의 색신(色身)을 여래의 본래모습이라고 여긴다면 나 자신의 색신(色身)이 나의 본래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색신은 성주괴멸(成住壞滅)하므로 결국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虛無)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여래의 가르침과 실상(實相)에서 영원히 멀어지고 등지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그러므로 여래의 색신을 등지지 않고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색신을 통해서 법신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때 나의 법신도 동시게 가슴속에 품고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 불자(佛子)가 된다.


부처님 재세 당시는 부처와 여래라는 존재가 이 지구상에 처음 출현하였을 때이므로 여래의 색신을 법신으로 잘못 알까 봐 염려하셔서 이런 법문을 설하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이후 이어지는 수많은 전등조사(傳燈祖師)들을 통해서 잘 알고 있으니 다만 이 사실을 잊지만 않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색신이 곧 여래의 체(體)가 아니라고 하시니 도대체 어떻게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자기의 법신(法身)을 보는 순간, 모든 여래의 법신(法身)도 동시에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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