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과 행위는 일합상 안에 있으므로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실로 있는 것이라면 곧 한 덩이리의 모양이니, 여래께서 설하신 한 덩어리의 모양도 한 덩어리의 모양이 아니고 그 이름이 한 덩어리의 모양입니다.
우리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하나'라는 관념이다.
신(神)도 하나, 부처와 중생도 하나, 세계도 하나, 우리도 하나, 진리도 하나, 남과 북도 하나, 한마음 등등...
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런데 왜 이런 하나 됨을 그렇게 갈구할까?
바로 둘이나 혹은 그 이상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서로 다름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한 색깔을 서로 받아들여 각자 꽃을 피우다면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어떻게 살든 중생들 각자의 뿌리는 모두 불성(佛性)을 근본으로 해서 인연법에 의해 서로 이어져 이미 하나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데, 또 하나로 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허망한 관념일 뿐이 아닌가?
다만 그것을 체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끝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본래 일합상이 되어 있으므로 인과(因果)와 인연(因緣)에 있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내가 상대에게 보시를 해서 복을 짓는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직접 반드시 그 상대방에 의해서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고 다른 타인으로부터 우연히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니 내가 보시를 하고 나서 상대방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성립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내가 상대방을 해쳤다 치자.
그런 악업에 대한 과보도 반드시 그 상대방에 의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여러 환경고 우연한 인연들에 의해 고통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인과법이 우주의 법칙이라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즉, 인과를 이루는데 대우주 전체, 생명계 전체가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의 법칙이 곧 인생의 법칙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한 번 악업을 지으면 그 과보를 충분히 받고 나서도 쉽사리 그 여파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또 다른 업장을 계속 짓기 쉬운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어지고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나타나는 인과의 모습은 인(因)과 과(果)가 전혀 다를지라도 그 이치나 시스템을 파고 들어가 보면 인과의 속 내용은 동일하다. 즉, 인(因)에 따른 동일한 내용과 양(量)만큼 과(果)가 오게 된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의 인(因)을 알고 싶다면 동일한 또는 반대의 행위를 했다고 무조건 단정 지으면 오류가 생긴다. 반면 그 고통의 속 내용을 잘 살펴보면 내가 전생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대강 비슷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
이런 법칙 자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바로 고행인욕(苦行忍辱)이다.
그러니 이미 하나 되어 있음을 떠나 또 하나 된 것을 생각하는 관념을 가진다면 그것은 하나가 아니라 둘인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을 제외한 한 덩어리와 그것을 인식하는 자기 자신으로 나뉘는 것이다.
그래서 수보리가 일합상(一合相)은 이름뿐인 것이라고 한다.
그럼 무엇을 기준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까?
보다 높은 기준이 좋은 것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보다 낮은 기준으로 평준화시켜 억지로 하나 됨을 만들었기 때문에 파열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부처라고 불리는, 중생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한 그것을 기준으로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모두 행복하니까.
어느 누구라도 한 사람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완전한 하나가 결코 될 수 없다.
내 마음과 내 행위가 일합상 안에 있으므로 모든 존재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고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윤리도덕의 의무(義務)가 있음을 알게 된다.
왜 내가 마음을 밝히고 착하게 살며 남을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윤리도덕은 단순히 지키면 좋은 것이 아니라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이 실상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 의무를 소홀히 했을 때 개인은 악업(惡業)을 짓는 것이고, 나아가 가족을 넘어서서 모든 존재에게 공업(共業)을 부과하여 고(苦)를 초래하게 된다.
그럼 일합상(一合相)이 되고 난 후에 자기는 어떻게 되는가?
그 속에 사라져 버리는가, 아니면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그때는 각자가 모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