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니라
부처님이 얼마나 인자하고 자비로운 분인지 이런 표현에 다 나와 있다.
반야바라밀을 경(經)으로 받아 지니면 그것을 또 타자화(他者化)해서 자기와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따로 놓고 따진다. 중생의 우둔함을 끝이 없다. 생각이 항상 먼저 발동해서 그렇다. 생각은 늘 대상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염려해서 그냥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고, 부처님 설법의 모든 것을 자기 존재를 향해 화살을 쏘는 것으로 삼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사생자부(四生慈父)인 것이다.
그래서 자기 존재와 반야바라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을 알아라는 뜻이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러니 일단 믿고 금강반야바라밀을 추구해 보시면 저절로 알게 된다.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