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3 (1.여법수지분1)

금강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의 설법을 받아 지니는 마음을 의미한다.

이시 수보리 백불언 세존 당하명차경 아등 운하봉지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我等 云何奉持)


불 고수보리 시경 명위 금강반야바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佛 告須菩提 是經 名爲 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은 금강반야바라밀이니 이 이름으로써 너희들은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니라


부처님의 이 설법을 어떻게 받들고 지닐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차대한 일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이름으로 받들고 지니라고 하신다.


즉, 금강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의 이 설법을 받아 지니는 마음을 의미한다. 그 마음을 바로 경(經) 이름으로 정해버렸다.


그러면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이라서 부처님의 이 설법을 받아 지닐 수 있는가?


금강(金剛)이란 가장 견고하고 가장 예리한 보물이다. 그 어떤 것도 금강을 부술 수 없고 벨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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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금강이라는 것은 가장 견고하니 일체 마장(魔障)과 업장(業障)과 경계(境界)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망가지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 즉, 부동(不動)의 금강심(金剛心)인 것이다.


또한 금강이라는 것은 가장 예리하니 중생으로서의 사상(四相)에 따른 온갖 번뇌망상(煩惱妄想)을 과감히 몽땅 베어 없애버리라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을 죽여버리는 금강도(金剛刀)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라고 하신 말씀의 칼인 것이다.


이 경을 받들어 지니려면 부처님의 이 설법이 자기 자신을 향한 금강심(金剛心)과 금강도(金剛刀)를 휘두르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은 물론 자기 본래면목을 찾아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금강만 있으면 허무에 빠지기 쉽고 자기를 죽이는 더 강한 자기라는 아상(我相)을 만들기 쉽지만 반야(般若)가 함께 있음으로 해서 이런 것을 넘어서서 드디어 찬란한 불성(佛性)을 드러낸다.


또한 반야(般若)는 부처님의 설법에 따라 근본을 알고 그 목적지를 향해서 올바로 길을 잘 찾아가는 것이고 아울러 그 길이 자기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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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은 도피안(度彼岸)이라는 뜻인데, 피안을 향한 마음으로서 금강과 반야를 닦아 나가면 결국은 중생의 모습을 넘어서 있는 피안의 세계인 자성불(自性佛)에 도달할 수 있는 올바른 믿음이다.


또한 이 경에서 설한 부처님 법문이 진실한 것이라는 금강과 같은 믿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기서 설한 부처님 설법을 받들어 지니려면 금강심을 가지고 금강도로 자기를 죽여가면서 거기서 나오는 반야를 터득해 가고 그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기는 따로 있고 경(經)만 달달 외면 받들어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독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교양은 쌓일지언정 자기 자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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