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눈을 감고 나 자신을 여래의 바닷속으로 풍덩 던져보자.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한 바가 없습니다.
여래가 무설설(無說說)이니 이를 듣는 것도 불문문(不聞聞)이 되어야 하고, 이를 질문하는 것도 불문문(不問問)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는 것을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한다.
그럼 우리 인간들끼리나 나아가 동식물들과 마음이 통하고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여래(如來)와 진리(眞理)와 우리가 마음이 통할 수 있겠는가?
세존께서 설한 바 없다고 딱 부러지게 말씀하실 수 있을 만큼 큰 제자들과는 마음이 통했지만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래께서 설한 바 법이 없다고 하신 뜻은 무엇인가?
여래께서는 지금 우주의 대도(大道)를 설하고 계신다.
그런데 대도는 여래께서 설하시든 말든 항상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현현(顯顯)하고 있다. 모든 것이 대도의 품에 있다. 나와 대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설하는 것이 바로 무설설(無說說)이다.
그러므로 여래가 설한 법(法) 또한 나와 따로 있어 보고 듣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수보리존자가 여래가 설한 법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 내가 어떻게 되어야 설한 바 없는 법을 듣는 바 없이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조용히 눈을 감고 나 자신을 여래의 바닷속으로 풍덩 던져보면 된다. 그러면 여래의 묘음(妙音)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그것이 나 안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고 화들짝 놀라게 된다. (아라한이 되지 않고 자기 안팎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는 업식(業識)과 마구니 장난이니 홀리면 안 된다. 또한 묘음을 들으려면 무설설할 수 있어야 한다. 무설설은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이나 말이 아니다.)
또한 내가 다가가려고 할수록 그 묘음은 멀어진다. 들으려고 하면 들리지 않는다. 마치 물속의 공을 손을 뻗어 집으려고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