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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노래 Sep 08. 2021

또 한 번의 가을

여름이 지나갔다. 새벽이면 눈이 떠지곤 했는데 이젠 알람이 울려야 깨는 내 모습을 보니 새삼 가을이 찾아왔음을 실감한다. 이른 아침 다소 쌀쌀해진 바람에 두터운 겉옷을 찾으려다 막상 뜨거운 햇살이 내리쬘 낮 걱정에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역시 선선해 있을 저녁 생각에 결국 외투 하나를 챙겨 나갈 채비를 마무리한다.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봄은 사람들의 마음에 설렘을 살포시 심는다. 우리는 겨우내 온몸을 가리었던 이불을 한 켠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다시 나의 문을 열어 세상을 마주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목표를 다짐하며 스스로를 풍성하게 채워 나가는 따스한 시간. 그래서 화창한 봄날 거리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에는 미소들이 번져 있다. 봄은 그런 계절이다.


가을은 그 설렘이 맺은 결실을 수확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슬픈 계절일까. 새로이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이들은 손에 꼽는다. 한창 들떠서 세워 둔 목표들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물어봐야 간신히 생각나는 지경. 높아진 가을 하늘이 오늘따라 나를 더 작게만 만든다. 하필 오늘따라 길가에 낙엽들이 발에 많이 채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마음을 할퀴는 것을 보아하니 가을이구나, 싶다.


저녁이 가까워 오는, 밝게 빛나는 해 앞으로 슬그머니 달이 모습을 드러낸 늦은 오후에 집 앞 공원의 벤치에서 커피 한 잔을 홀짝인다. 무더운 여름날엔 감히 엄두도 못 냈는데 시원한 바람에 홀린 듯 따뜻한 커피를 주문해 버린 탓이다. 벤치에 기대앉은 내 앞으로 많은 이들이 걸음을 옮긴다. 얼굴보다는 맞잡은 손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가을이 찾아온 탓이다. 엄마 손을 꼬옥 잡은 아이들, 연인들의 깍지 낀 손, 그리고 나이 든 부부도 지나가 버린 언젠가처럼 다시 손을 잡을 핑계가 생긴 계절이기에. 여느 봄날의 산뜻한 발걸음은 아니지만 힘이 실리는 한 걸음, 또 한 걸음이 내 앞으로, 그리고 다시 나에게서부터 떠나간다.


문득 확인한 핸드폰에 당신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새로움에 설레는 봄날도, 숨 가쁘게 지나가는 여름날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추어 돌아서 보는 가을날에도, 그리고 고요히 고개를 파묻는 겨울날에도. 그 어떤 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예쁘게 단풍이 든 이파리 하나를 외투 품에 조심히 담았다. 잘 말려서 보관하면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낙엽 책갈피를 나도 만들 수 있겠지. 언젠가 그대가 혼자인 것처럼만 고독할 그날, 책을 참 좋아하는 당신께 그 책갈피를 드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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