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 Jul 13. 2024

엄마 손, 환삼덩굴

'더불어 함께'라고 부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황야에 무법자가 있다면 들판에 무법자로 불리는 환삼덩굴이 나야! 사람들을 괴롭히는 식물로 악명이 높지. 들판에서 날 걷어내려고 내려하는 모습이 현상금을 붙여 쫓는 보안관이 된 것 같나 봐!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겨울엔 조용히 떠나는데도 날 그리 못 잡아 안달이더라고. 이 땅의 사람들은 자기 잣대로 판단해서 해가 된다 싶으면 없애려고 해. 하긴 너희끼리도 차별을 하거나 따돌림을 하더라고. 난, 애완동물이 아니니까 사람들에게 곰살맞게 대하는 건 나와 전혀 맞지 않아. 원래부터 척박한 곳에서 잘 자라긴 하지만, 누군가 들어서 있는 곳에 들어가 자라긴 어려워. 주로 사람들이 여기저기 개발한다 어쩐다 파헤쳐진 개활지, 밭둑, 논둑 그리고 버려진 들판에서 덩굴을 뻗어 살지. 그런데 내 덩굴줄기는 가시가 있어서 어딘가 달라붙어 있으면 잘 떨어지지 않으니 밭에 들어가면 농부들에겐 귀찮은 존재가 돼버리는 거지.

환삼덩굴 꽃망울

들에 내가 있다면 숲에는 칡 형님이 계셔. 우리는 사는 곳이 다르기도 하지만, 서로 영역이 겹치지 않더라고. 그런데 사람들은 형님을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데,  뿌리가 사람들 건강에 좋다던가? 그리고 도로를 절개한 곳에서 형님 뿌리가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더군. 칡뿌리는 입에 대지 않는 유럽과 미국에서 그런 능력만 믿고 가져갔다가 여기저기 퍼져서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던데, 정말 웃긴 일이야!. 그러고 보니 잘 뽑히지 않는 내 뿌리도 미움받는 것 같아. 옛날에는 나물로도 먹고 약으로도 쓰였다는데, 요즘은 그런 쓰임이 적어서 밭을 넘보는 나쁜 악당 취급하기 바뻐.  결국 내 오랜 진정한 친구는 네발나비뿐인가 봐. 아니 날 괴롭히는 토끼도 끼워줄게. 정 내가 미우면 토끼 많은 호주로 보내주던가.

환삼덩굴 꽃말, 엄마 손

나와 같은 친구 중에 새삼이라고 있는데, 그 친구는 다른 식물에 기생해서 영양분을 빨아먹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의 열매 토사자가 남자들에게 좋다고 해서 엄청나게 대우해 주더라고. 내 힘으로도 충분히 사는데 사람에게 잘 보이겠다고 남까지 괴롭히며 죽게 만들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아.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모르지만, 내 안에 탈모를 억제하는 힘이 있다고 샴푸인지 화장품인지 개발한 거 같더라고. 이 땅 사람들 극성에 이래저래 들들 볶이게 생겼어. 사람들이 관리하는 곳은 어쩔 수 없더라도 내 영역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뽑혀나간들 너희들이 좋아하지 않는 식물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될 거야. 이 땅에 뿌려진 수많은 생명들이 숨죽이며 잠들어 있는 대지에서 너희가 좋아하는 애들만 자라서 기쁘게 될 일은 없을 거야. 


내 처지는 겨우 한해도 채우지 못하고 사는 약한 존재일 뿐이야. 정작 위험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믿지만, 정작 자신도 보듬지 못하는 너희들이야. 너희끼리 전쟁도 한다는데, 그래봤자 서로 다치고 승자가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도 우리를 못살게 대하는 자세는 무모한 거 아닐까?  난 그걸 뭐라 하고 싶지도 않지만,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대지를 달랠 수 있는 것은 우리처럼 생명력이 강한 식물들이지. 네모 반듯한 건물과 아스팔트는 지구를 점점 더워지게 만들 뿐이야. 필요와 불필요를 가르기 전에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한 여름에 피는 내 꽃말은 엄마 손이야. 아이들을 키우면서 거칠어진 엄마 손을 상상해 봐. 내 잎은 아이를 보듬는 손을 닮았지. 어쩌면 이 거친 땅을 지키면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몰라. 난 그 엄마의 마음처럼 잎과 뿌리를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어. 생각해 봐! 사람 꽃말을 '더불어 함께'라고 부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환삼덩굴 군락


작가의 이전글 박대박, 박꽃과 박각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