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들이 백일동안 붉게 피었다고 백일홍이라고 불러. 고향인 멕시코에선 덩굴 식물이라 잡초 취급받았는데, 유럽인들이 보기 좋게 곧고 번듯한 꽃대와 무성한 잎 그리고 여러 색깔의 꽃으로 개량한 후에 무척 좋아하더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난 달라진 게 없는데, 사람들에겐 달리 보이나 봐. 척박하고 뜨거운 곳에서 살려고 기어가는 모습은 볼품없었겠지. 그래도 잘되고 못 되는 것에 따라 마음이 바뀌고 꽃이 졌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너무 잔혹한 거 같아.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고 굳이 싫은 것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지. 나도 촉촉하고 포근한 곳에서 자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낮은 뜨겁고 건조하고 밤은 춥지. 내게 맞춰주지 않는다고 누굴 탓할 수도 없었지. 그래서 땅 위를 기어 자랄 수밖에 없고 거칠어진 잎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묵묵히 제 할 일을 했지. 그렇게 피운 꽃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거창한 만족 따윈 없었어. 꽃 하나도 피기 힘든데 두 번째, 세 번째 꽃이란 나에겐 사치였기 때문이야. 그저 피운 꽃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씨앗을 맺지 못한다면 백일이 아니라 이백일이라도 버텨내려 했겠지.
황량한 사막에서 우물을 찾고 어린 왕자는 사막이 아름답다고 했어. 소중한 보물을 숨겨놓은 얄궂은 사막에 감동한 거지. 그러면 황량한 내 고향도 나로 인해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움이라는 건 말이야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을 어찌 보느냐에 달린 것 같아. 흔히 보이는 먼지도 한 톨 한 톨 뭉쳐서 우리가 사는 땅별을 만들어냈어. 꽃이 오랫동안 피었다고 해도 그건 영원할 순 없잖아. 나도 그 먼지로 돌아가게 될 거야. 내 백일을 너희 십 년과 맞잡을 순 없어도 결국 너희도 마찬가지 먼지로 돌아가지. 그리보면 곁에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일 거야. 보기 좋은 것이 먹기 좋다고 예쁘면 말할 나위 없이 좋아. 나도 향기 좋고 보기 좋아야 벌레가 더 많이 찾아올 수 있거든. 그들을 자극하고 유혹하는데 예쁘면 도움이 되기도 해. 그런데 그건 씨앗을 제대로 맺기 위해서일 뿐이야. 곤충 대신 바람이 도와주거나 혼자 씨앗을 맺을 수 있으면 눈과 코를 자극하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뿌리로 군락을 늘려가는 식물에게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지 않아도 돼.
내게 아름다움이란 생명을 가꾸는 거야. 한해살이지만 내게 주어진 생명을 더 풍성하게 누리는 거지. 뿌리를 내린 곳이 보도블록 틈이거나 벼랑 끝이라도 새싹을 내고 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늦가을에도 망설이지 않고 꽃봉오리를 내기도 해. 잎이 빈약하거나 꽃이 작고 보기 좋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고 주워진 생명을 키워가지. 옛날 어촌을 괴롭히던 이무기와 싸우러 간 무사가 있어. 그가 이기면 흰 돛을 달고 돌아오기로 했는데, 붉은 돛의 배를 보자 그를 사모했던 여인은 좌절해서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어. 그런데 붉은 돛은 괴물과 싸우다가 피로 얼룩진 것을 미처 바꿔달지 못한 거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그녀의 무덤에 피어난 꽃이 나라고 해. 어떤 처지라도 생명은 소중한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안타까워. 설령 무사가 죽었다고 해도 그는 결코 그녀가 삶을 저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거야. 난 줄기가 꺾여도 잎이 뜯어 먹혀도 포기하지 않아. 어쩌면 꽃을 낼 수도 없거나 씨앗을 맺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했어도 현재를 살아내는 것은 아름답고 참된 길이야.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이뤄지지 못했어도 아름답게 봐야지. 그곳엔 진심이 들어 있으니 내가 그걸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좌절하면 안 돼. 아름다움을 얻고 싶으면 아름답게 보려 하고 사랑을 하고 싶다면 내 마음을 주는 것뿐이야. 나를 그리 가꾼다면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