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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Aug 24. 2024

쑥부쟁이의 향기

난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꽃 쑥부쟁이야! 쏟아지는 장마 그리고 훅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여름을 견디고 있어. 밤이 길어져야 꽃눈을 만드는데, 작년 보다 겨울은 줄어들고 여름이 길어진 것 같아. 그래도 시간은 흐를 테고 기다림은 희망적이야. 하지만 내 전생은 불행했어. 대장장이 아버지를 모신 불쟁이 딸이었는데, 쑥을 많이 캐서 마을에선 쑥부쟁이라고 불렀지. 어느 날 멧돼지 덫에 다친 청년을 간호하다가 좋아하게 되었는데 완쾌된 청년은 돌아오겠다는 약속만 남기고 떠났지. 그런데 몇 해가 지나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실망한 난 닥친 슬픔을 잊으려고 애써 부정하다가 스스로 무너져 버렸지. 그리고 죽어서 꽃이 된 거야.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나를 찾아오지 않은 청년에겐 가정이 생겼더라고. 입술도 마르기 전에 돌아앉은 청년을 원망했지만, 곱씹어 생각해 보니 그걸 이겨내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었어. 그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후회도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은 뒤바뀌지 않아. 나와 국화과 친척 개미취가 이야길 해주었는데, 어느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무덤에 생전에 좋아하던 개미취를 심었데. 그 꽃을 볼 때마다 아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슬퍼했지만, 결국 그 아들은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잘 살 수 있게 되었데. 나와 다른 선택을 했던 그 아들은 나보다 현명해.  

쑥부쟁이. 꽃잎이 뒤로 젖혀진다.

그랬어도 지금은 괜찮아. 씨앗은 저절로 싹이 나는 것도 아니고 꽃을 피웠다고 바로 열매가 되지 않아. 내가 해야 할 일은 하고 기다려야 하지.  그렇게 기다렸는데 싹이 나지 않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슬퍼하는 것은 맞지 않아. 밥을 지을 때 뜸이 들기를 기다리는데 밥물을 못 맞추거나 불을 조절하지 못해서 밥이 설익기도 하고 타버리기도 하거든. 그러면 무엇이 잘못된 건지 고쳐 다시 지으면 되는 일이야. 내 꽃망울은 연보라 꽃잎을 두르고 노랑 구슬들로 맺혀. 알알이 씨앗을 맺길 기다리며 꽃술을 펼치지. 하지만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땅속뿌리줄기로 군락을 이룰 수 있거든.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웠는데 이루지 못했다고 그대로 포기하면 살 수 있는 풀은 없을 거야. 가을이 되면 틔였던 잎도 하나 둘 떨구고 겨울을 피하는데, 난 잎을 남기고 겨울도 견뎌내지. 꽃은 마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기다림일 뿐이야. 꽃을 피우기 전에도 할 일 있었고 꽃을 피운 후에도 해야 할 일이 있어. 내가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알고 행동하는 것만이 희망을 품을 자격이 있어. 그저 참으면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생각도 어리석지만, 할 일을 잊어버리고 회피하는 것을 더 부끄러워해야 해.

쑥부쟁이 (개미취보다 키가 작고 꽃잎이 많다)

꽃이 좋아야 나비가 온다고 자기는 갖추지 못하면서 남 탓만 하는 이도 있는데 내가 꽃이 되니 웃어도 소리가 나지 않고 울어도 눈물이 없더라. 하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있어. 살고자 하니 돌 위에서도 꽃은 피지. 그렇게 피어난 꽃에 웃음과 눈물 대신 향기를 남겨. 가슴을 활짝 펴고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며 날 음미해 봐. 난 시간이 멈춘 듯 누군가 다가오길 기다리지 않아. 만나기 위해 다가서는 내 몸짓이 느껴질 거야. 가을에 파란 하늘을 도화지 삼아 코끝으로 달려가는 기다림. 바로 내 향기야. 


국화차 


노란 국화차 향기가

하얀 구절초 하늘에

쑥부쟁이 그리다가

개미취 눈물이 된다.


연약한 꽃대 위에

소소리 견뎌온 사연들.

건들바람 꽁무니에 매달려

가을을 떠다니고 있구나! 


개미취와  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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