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흔을 견딘 시간, 아부다비> 2-7

2-7 2021년 봄 소금맛 솜사탕 단짠 캐서린

2021년 봄이었다.


아부다비는 봄에 접어들면 한국의 여름보다 뜨거워진다. 봄에 해당하는 3-5월의 기온은 섭씨 33-37도이다. 여름이 되면 아부다비의 기온은 38-45도에 육박한다. 겨울이라고 해도 최고기온은 30도를 웃돌때가 많으니 이러한 날씨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아부다비 아파트는 야외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내가 살던 제이나 아파트는 A-G까지 동마다 1개씩 수영장이 있었다. 내가 살던 E동의 수영장은 우리집에서 가까웠다. 나는 복층으로 된 빌라에 살았다. 집 거실의 베란다 쪽 창문은 큰 통창으로 되어 있었다. 그 곳에 밖으로 향하는 출입문이 있었다. 출입문을 빠져나와 오른 편으로 쭉 걸어가면 계단을 만난다.


계단을 1분가량 오르면 수영장이 펼쳐진다. 그 곳은 아침 6시에서 저녁 9시까지 열려 있어 나와 딸들이 자주 이용했다. 나는 수영을 할 줄은 알았지만 물을 무서워 했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영을 할라치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릴것만 같은 착각과 공포에 쉬이 깊은 물에서 수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중학교때 집앞 스포츠센터에 새벽부터 줄을 서서 나에게 수영을 배우게 할거라고 애쓰셨다. 하지만 1년 내내 수영을 배워도 나의 수영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초반에서 중급반으로 가는건 다음 생에나 가능하다고 생각됐다. 아무리 팔을 휘둘러대도 수영강사는 내 팔이 잘못되었단다. 각도가 틀렸다나? 무릎도 구부러지면 안되고 몸은 뻣뻣하게 일자를 유지해야한다고 했다. 수영은 물 속에서 받는 일종의 벌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자 수영장 물은 언제가도 차갑게 느껴졌고 수영을 향한 내 마음도 같이 차갑게 식어갔다.



피아노를 배울 때도 그랬다. 나는 피아노를 한참 배우고 나서도 피아노 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바이엘과 체르니 100번은 무슨 깊은 우정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그 둘 사이만 시계추처럼 오갔다. 집 앞 피아노 선생님의 댁에 가는건 선생님이 들고 있는 30cm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피아노는 그 옆 덩치 큰 괴물처럼 보였다. 어떠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면 그것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 내 어릴적 우리집 거실 한켠에는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 옆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이유없이 위축되곤 했다.


생각은 무섭다. 기억 속에 오래 남아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따라 다닌다. 그러한 그림자는 우리를 멈추게, 작아지게, 무너지게 한다.




그런 나의 수영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아부다비의 국제학교들은 아부다비의 날씨 때문에 대부분은 큼직한 수영장 시설을 겸비하고 있었다. 딸들의 첫 학교인 GAA도 유치원부터 시간표에 1주일에 1회 이상 수영수업이 들어 있었다. 유치원과 초등학생의 풀은 달랐다. 유치원 학생들의 수영장은 보통 발이 닿는 깊이였다. 그렇지만 초등 학생부터는 옆의 풀로 옮겨가 수업을 들어야했고 1.8m 이상 물이 깊어지고 다이빙대도 있었으며, 수준별로 반을 나누어서 수업을 받고 학교 간의 수영대회도 자주 열렸다. 큰 딸은 당장 수영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수영을 할줄 모르던 딸들을 위해서 그 당시에 살던 리한하이츠 아파트 단지에서 수영을 가르치던 아랍 강사 모하메드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흔쾌히 레슨을 하겠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기 전 나는 모하메드에게 나에게도 수업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첫째의 수영이 급하니 주하의 강습은 30분, 주하의 강습이 시작되기 전 10분은 민하의 강습, 뒷 10분은 내가 강습을 받는 식으로 말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이런 식으로 강습을 받게 되면 나도 민하도 서서히 물에 적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모하메드는 수영만 가르쳐 준것이 아니었다.




수업 첫 날 모하메드가 말했다. '수영을 그냥 걷는다고 생각하고 하세요. 걸을 때 어떻게 걸으세요? 팔과 다리는 어떻게 움직입니까? 자연스럽게 움직이지요. 물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팔과 다리를 자연스럽게 움직이세요.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내가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수영하는 거에요. 일단 수영을 할줄 아신다고 했으니까 한번 해보세요. 제가 볼게요.'


둔기를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 편안한 모습이라고? 정해진 답이 없다고? 한국에서 나는 늘 각을 잡고 답이 정해진 수영을 했다. 그는 내가 아는 것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말에 나의 마음은 순식간에 편안해졌다. 그래. 이 곳은 한국이 아니니까 나에게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그냥 내 마음대로 해보자하고 마음 먹은 나는,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긴장은 그대로였다. 나는 아직도 팔과 다리의 각도를 의식하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물이 깊어지기 시작한다고 느낄 때쯤 무서움을 느끼고 그 자리에 섰다. 그리고 모하메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세가 엉망이라고 할게 뻔하다. 왜 수영을 하다 일어서냐고 핀잔을 주겠지?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반대였다.


'아. 잘하시네요. 지금 하는 것에서 오늘은 숨쉬기만 조금 다듬어 볼게요. 지금도 숨쉬기를 잘 하고 있어요. 그런데 조금만 손보면 수영하기 훨씬 편하실거에요.' 또 다시 충격 일격 추가다. 모하메드는 내가 수영을 잘하게 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았다. 내가 수영하기 편하게 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나를 위하고 있었다. 내 수영 영법에 대해서도 다듬으면 된다고 말했다. 나의 수영 영법에 대한 모하메드의 이야기는 꼭 나의 인생을 위한 조언같이 들렸다. 잘하려고 살지말고 내가 편안하게 살면 된다고. 정해진 기준은 없으니 지금 잘 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조금만 다듬어 나아가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큰 위로를 받았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들어본적 없는 말이었다. 온통 나를 바꿀 필요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채찍질할 필요도 없어. 나는 이미 괜찮은 사람이야. 조금만 다듬으면 돼. 그날 이후 그가 한 말은 내 인생 모토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명 나의 수영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은 이가 있었다. 독일에서 온 캐서린이었다.




캐서린은 쾰른성당으로 유명한 독일 쾰른 출신이다. 내 첫째 딸, 주하와 같은 학년의 딸 아이 폴라의 엄마이기도 하다. 폴라와 캐서린을 만난 건 아파트 단지 안 어느 야윈 나무 앞이었다. 주하가 밖에 놀러 나간다고 하고 저녁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나는 주하를 찾으로 아파트 단지 안을 배회했다. 그때 금발의 긴 머리에 눈에 띄는 밝은 핑크 색의 레깅스와 탱크 탑을 아래 위로 입은 폴라가 보였다. 외모 만으로도 당차보이는 인상이 강하게 풍겼다. 그리고 그 옆에 순진하게 웃으며 내 딸 주하가 서 있었다. 폴라는 자기 키의 곱절에 곱절 만한 나무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폴라와 주하를 제외한 몇몇의 아이들은 처음이 아닌 듯 능숙하게 이미 벌써 나무 위에 올라가 앉아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제법 튼튼한 가지처럼 보였지만 나는 속으로 '에구구 위험하겠다. 주하는 차라리 올라가지 말았으면'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여자 어른 한 명의 부드럽고도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폴라, 어제는 잘 올라가고 내려오더니 오늘은 왜 거기서 힘들어하고 있니? 엄마가 도와줄테니 시도해보렴. 실수해도 괜찮아.'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흠칫 놀랐다. '저 엄마는 아이가 다치면 어쩌려고 저런 말을 함부로 하나?'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폴라와 주하가 차례대로 나무에 올라갔고 나는 그런 그녀들과 옆에서 독려하는 캐서린을 놀란 토끼 눈으로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이게 맞나?'하는 의구심이 솟구쳤지만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폴라와 주하는 나뭇가지에 살포시 앉았고 그리고 다시 땅으로 폴짝 뛰어 내려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캐서린이 다시 소리쳤다. '브라보, 폴라. 해낼 줄 알았어. 이거 봐. 뭐든 해보면 돼. 안 돼도 상관없어. 도전하는 건 좋은거야.'


다시 머리가 얼얼했다. 캐서린의 말이 머릿 속을 맴맴 돌았다. 그녀의 말은 나의 양육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도전하기 전에 내가 안될 것 같은 일은 접고 나에게 가능한 것이 무언인지 잘 판단하고 처신하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던 내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과연 어떤 게 맞는 걸까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녀와 나는 기준이 달랐다. 그것이 문화적 차이에서 온 것인지, 개인적 차이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아이에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요소의 기준과 나의 기준이 달랐고, 그녀가 아이에게 말하고 대하는 방식과 나의 방식이 달랐다. 주하와 폴라는 곧장 나무에서 내려와서 맞은편 해변으로 달려가 모래성 만들기를 시작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캐서린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캐서린,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게는 너의 양육관이 재미있게 느껴져.' 내가 용기있게 입을 뗐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나무에 올라가 보라고 권하는 부모를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웃음) 나무는 커녕 자녀가 안전하게 보이는 주변의 정돈된 시설들을 이용할 때도 늘 주의를 주지. 위험해, 가까이 가지마하고 말이야. 이것이 독일식 육아와 한국식 육아의 차이일까?' 나는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내 생각을 펼쳐놓았다.

캐서린이 말했다.

'그럴수도 있겠다. 아니면 나의 개인적인 육아관일수도 있고. 나는 아이가 무엇이든 해봐야한다고 생각해. 부모가 곁에서 도와주면서 관찰하다보면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이 정말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불안함과 경험부족에서 온것인지 알 수 있어. 부모는 그 과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걸 하는거야. 물론 아이가 다치거나 실패하는 일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폴라가 그게 무서워서 어떤 시작도 하지 않는 선택은 안했으면 좋겠어. 그 아이가 상처나 실패를 겪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갈 수 있는 길과 가야할 길을 찾으면 해. 작은 실패와 상처를 겪다보면 그것이 자신에게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될거야. 나는 폴라가 그런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캐서린의 말을 들은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소위 헬리콥터맘이나 타이거맘이라고 하는 전형적인 동양엄마가 나일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캐서린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나에게 그런면이 있을수도 있겠구나하고 깨달았다. 나는 헬리콥터맘처럼 아이 주변을 맴맴도는 타입은 아니었다. 타이거맘처럼 아이를 통제하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이끌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그렇다고 캐서린의 자기주도적 육아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 둘 사이 어디쯤 어정쩡하고 불완전한 육아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떨 땐 유교식으로 자녀들이 내 말을 들어주며 복종하여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다른 때에는 서양자유주의 육아방식으로 아이들이 그저 하고 싶은대로 두는 것이 그들의 자립심을 기르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캐서린을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며 나만의 새로운 육아관을 정립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육아는 자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을 존중하고, 지원하며, 그들의 성공과 환희의 순간 뿐 아닌 실패와 상처입고 힘들어하는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었다. 또 좋은 어른으로서의 성숙한 생각의 본보기를 보이고 싶었다. 나는 늘 좋고 나쁨이 뒤섞인 인생에서 그 희노애락의 풍성함을 몸으로 느끼며 나의 색을 입히며 산다는 것은 그것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다. 이제 그것을 자녀들에게도 적용하자고 마음먹었다. 자녀들이 상처입을까 두려웠던 어제에서 자녀의 상처를 의연히 바라보는 내일로 나아가자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Unconditional한(조건없는) 사랑을 주겠다고. 자녀가 내가 원하는 모습과 행동을 보일 때만 칭찬과 격려를 하는 조건부적인 사랑말고 아무 조건없이 그들의 존재를 수용하는 사랑을 하겠다고. 그리고 딸들에게 입으로 소리내어 매일 아침 밤낮으로 말해주기 시작했다.


'주하야, 민하야. 너는 이미 충분하단다. 지금도 엄마는 너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니가 키가 더 크거나 살이 더 찌거나 마르다고 해서 다른 니가 되는 건 아니야. 니가 공부를 더 잘하거나 잘난 사람이 되더라도 또 그렇지 않더라도 너는 너야. 엄마는 지금의 니가 좋아. 너의 어떤 모습도 사랑스러워. 니가 하루를 살아가는 고단함을 엄마는 잘 알고 있어. 그러니 니가 원하는 적절한 때에 너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펼쳐놓으렴. 억지로 누군가의 기대와 사회의 통념에 너를 맞출 필요는 없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너는 존재로서 니 할일을 다하고 있는거야. 니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들어주면 언제나 길을 니 앞에 펼쳐질거야. 하고 싶은 일인지, 지금이 그 때인지 분명히 아는 것은 오로지 너의 몫이야. 너에게는 그 힘이 있어. 나는 그걸 믿는다. 애쓰지 말고 편안하게 흐름에 맡기면서 하루를 잘 보내기를. Good luck!'


캐서린과의 풍성한 대화로 나의 육아관은 조금씩 더 자리잡혀 갔다. 나는 참 복받은 사람이었다. 나에게 다가온 그녀가 고마웠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만난것처럼.


내가 딸들에게 해준말은 어쩌면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또는 이 세상의 어른들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말을 딸들하게 해주며 나에게도 해주고 있었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지금에라도 그 말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잘하고 있어, 유혜경. 너무 애쓰지 마. 지금도 충분해. 편안하게 하고 싶은 걸로 해봐.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오르막과 내리막에 흔들리지 않게 자신을 잘 돌보자. 그런 모습으로 주변을 따스하게 돌보며 다른이들도 자신을 돌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져서 세상이 조금씩 밝아졌으면 좋겠다. 오늘 힘든 일이 있겠지만 너의 감정, 생각, 행동은 그것들보다 여려 보일지 몰라도 심지는 더 단단해. 억지로 그것을 증명해 보일 필요 없어. 그냥 살자. 지금처럼. 충분하게.








우리 아파트는 아파트 단지 내에 해변을 길게 끼고 있었다. 제이나는 A동부터 G동까지 있는데, 해변은 거의 B동부터 F동까지 연결 되어 있었다. 우리집은 E2동-01호 이층집이었다. 1층 마당을 나오면 해변과 연결되는 산책로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자주 SUP를 낑낑거리며 끼고 나와 바다 위를 스윽스윽 가로지르거나,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했다. 아부다비의 강한 태양이 내 몸 곳곳 내리쬐어 내 몸 속 모든 병균들을 살균해주길 바랬다. 바닷물의 소금이 내 피부를 덮으며 내가 가진 온통 나쁜것은 다 없애주었으면 했다. 그렇게 내가 정화된다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해변의 초입에는 Sea Swell 카페가 있었다. 카페에서는 간식들과 커피, 스무디 등을 주로 팔았고 아이스크림과 팝콘등도 팔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건 뭐니뭐니해도 카페라떼였다. 겨울엔 따뜻한 카페라떼를 여름엔 아이스 라떼를 마시며 카페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주었다.



첫째 딸, 주하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우연히 폴라를 만나 친하게 된 것을 계기로 폴라와 주하는 자주 만났고 그 계기로 나도 캐서린과 만나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봄 캐서린이 이 곳에서의 9년 생활을 뒤로 하고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로 '메멘토 모리'이다. 끝을 생각하고 생에 임한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확연히 다르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끝을 아는 만남은 그래서 오히려 좋은 점도 많았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계획적으로 쓰기 위해 캐서린과 나는 목요일 마다 만나 같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거나 차를 마시곤 했다. 캐서린은 철인 3종을 할만큼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활동적인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딸 폴라를 대할때도 늘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자녀를 마치 성인을 대하듯 하는 모습은 나에게 많은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다. 철저히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경청하며 작은 시도나 실패도 격려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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