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020년 가을 나와 T가 꼭 닮은 사수자리 겉바속촉 사라
사라를 알게 된 건 2020년 9월이다. 아부다비는 새 학기가 9월에 시작한다. 둘째 민하는 AIS에서 Year 1이 되어, 미스 조 선생님 반이 되었다.
영국의 학기제는 한국과 다르다. 유치원을 Foundationa stage라고 하고 초등부터 고등까지는 Year을 붙인다. Foundationa stage는 FS라고도 불리고 만3세가 되면 입학이 가능한 FS1, 만4세를 위한 FS2이렇게 두 학년이 있다. 초등은 만 5세부터 시작이고 Year1을 줄여서 Y1이라고 부르고 쓴다.
민하는 2019년 10월부터 FS2로 아미티에 다니기 시작했다. 로즈우드 널서리에 다닐 때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민하는 아직은 영어가 서툴렀다. 하지만 AIS는 유치원이지만 학교라 부모들이 아이들을 직접 아침에 등교시키고 하교할 때는 교실 앞에서 데리고 가게 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민하를 위해 용기를 내어 몇 명의 학부모와 친해졌다. 엄마들의 티타임에도 함께하고 아이들끼리 어울리는 플레이 데이트(Play date)라는 것도 자주 하게 해주었다. 아니, 거의 매일했다. 그리고 결국은 내가 앞장서서 주도하여 민하 반의 거의 모든 아이들과, 또 민하의 언니, 주하의 반 모든 아이들과 한번 씩은 플레이 데이트를 시켜 주었다.
민하의 아부다비 적응을 위해 나에게 남은 카드가 이제 거의 없었다. 쓸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소진한 상태였다. 민하가 긴장하지 않고 학교 생활을 잘 할수 있다면 더한 것도 할수 있었다. 나의 정성이 통했는지 민하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등교할 때 우는 횟수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반은 성공이었다. 감사합니다. 이 시기에 나는 물에 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기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마구 들이댔다. 하교할 때 유심히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민하의 친구들 중 누구라도 민하와 말을 섞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했다.
대체로 하교할 때의 아이들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더 놀고 싶어했다. 나는 그런 기회를 포착하고 싶었다. 민하가 FS2에 들어간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말레이시아 하이파와 이탈리아에서 온 '아리아나'가 민하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곱슬거리는 밝은 갈색 머리의 여자 아이였다. 민하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얼굴은 아부다비 한낮의 햇살보다 밝았다. 속으로 무척이나 놀라고 고마웠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을텐데 민하와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짓고 있을까? 민하가 학교에 있는 동안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이 놓이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 언어를 뛰어넘어 상대를 포용하는 융통성과 따뜻함은 어른이 오히려 아이에게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순간 처음보는 아리아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가 무척이나 겸연쩍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내가 입을 뗐다. '안녕, 나는 민하의 엄마야, 만나서 반가워.'
민하의 반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나, 민하랑 더 놀고 싶어요!'이보다 더 반가울 데가 없다. '암요, 암요. 그럼 우리집으로 놀러 올래? 아니면 민하랑 몰에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갈래?' 내 말을 듣는 아이의 얼굴에 핑크빛 생기가 돈다. '네! 네! 지금 갈래요. 엄마한테 물어볼게요.'
곧 이어 아이의 엄마가 도착하고 아이는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입을 뗀다. '오늘은 방과 후에 수영 수업이 있는데 내일은 어떠니? 아니면 민하 시간이 되면 수영 수업이 끝나고 우리 집에 데려다 주세요. 그때 노는건 어떠니?'
머릿 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이런 날이 도래하는구나. 나는 겉으로 태연한척했지만 속으로는 지화자를 외쳤다. '되고 말고요. 제가 있다 그쪽 집으로 민하를 데려다 줄게요.' 드디어 첫번째 플레이데이트가 성사되었다. 그리고 이 플레이데이트는 이후 민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민하는 용감해지고, 과감해지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아부다비를 떠나기 직전 해, 민하는 반에서 반장 인 representative of class 활동을 1년 간 수행했다. 울며 불며 학교를 가지 않겠다던 아이가 반장을 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고 소통한 것은 그중에서 가장 큰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이 되었다. 이 해는 민하의 가장 절친 나딘을 만난 결정적인 해였다. 나딘과 민하는 지금까지도 매일 메시지를 주고 받고받는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1년에 한번 씩 만나자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AIS는 민하가 아부다비에서 세 번째로 다닌 기관이었다. 앞서 다닌 두 곳의 교육기관들에서 적응을 잘 못했던 터라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민하는 FS2(유치부 2학년)로 시작해 Year2(2학년)까지 약 4년을 AIS에서 잘 보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민하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엄마!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는데, 나 그 애랑 베프가 된 것 같아. 그 아이랑 놀고 싶어. 그 아이의 엄마한테 지금 전화해봐.' 찌릿하고 몸에 전율이 흘렀다. 베프라니? 우리 민하에게도 드디어 베프가 생기는 날이 오는 구나. 내 귀를 의심했다. 게다가 그 아이 엄마의 핸드폰 연락처까지 받아오다니!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었다.
2019년 10월 중순 AIS FS2학년에 합류했을 때에도 민하는 적응기간이 길었다. 아침마다 교복을 입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학교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차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당연했다. 교실에 가 봤자 말통하는 친구도 하나 없었을 테고,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 내용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해 따라가지 못하니 자기 효능감이 떨어졌을테다. 그렇게 8시부터 시작해 3시까지 학교에 붙잡혀 있으려고 하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뒷걸음질 치는게 당연했다. 이듬해 2020년 9월 Year1으로 진학했을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전에 이미 무리가 형성되어 있는 다른 여자아이들 틈바구니 쉬이 파고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민하에게 새로 전학 온 나딘의 존재는 가뭄의 단비같은 것이었다. 나딘은 새로 전학왔기에 아직 반에 섞이지 못했다. 민하와 같은 처지였다. 둘은 같이 노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렇게 민하의 웃음도 늘어나고 학교를 싫어하던 민하도 학교 가기 전날 스스로 학교 가방을 챙기기에 이르렀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리한 부적응의 기간이 끝나는게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민하가 웃으며 기관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아부다비에 괜히 딸들을 데려와 고생시키고 있다는 내 마음 속의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민하에게 다가 온 나딘이 내게는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다. 그래서 나에게도 구세주같은 존재였다.
당시 민하반 엄마들은 카톡과 비슷한 왓챕이라는 메신저로 반 채팅방을 만들어 준비물 등을 공유하고 자녀들의 원활한 학교 생활을 위한 소통을 하고 있었다. 혹시 그 곳에 그녀가 이미 추가되어 있나하고 들여다 봤다. 유레카! 그녀의 번호와 사진 프로필이 보였다. 그녀 딸들의 사진인 것 같았다. 민하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친구 맞니?' '응!'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속으로 되뇌었다. '민하에게도 베프가 생긴다. 민하에게도 베프가 생긴다.'
숨을 한번 고르고 나딘의 엄마에게 왓츠앱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오늘 AIS에 전학 온 나딘의 엄마세요? 저는 나딘과 같은 반 민하의 엄마랍니다. 민하가 오늘 새로 온 친구와 잘 놀았다고 연락을 해 보고 싶다고 해서 연락드려요.' 적절할 표현을 찾기 위해 메시지를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이렇게 적고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바운스 바운스 뛰고 있었다. 그녀의 응답을 기다렸다.
3분 후 드르륵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저는 나딘의 엄마 사라에요. 나딘도 집에 와서 민하이야기를 하네요. 먼저 연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민하와 딱 붙어 앉아 그녀의 메시지를 읽는 내 손에서 땀이 났다. 무척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으시면 지금 잠깐 왓츠앱 영상통화를 해도 될까요?' 다시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바운스 바운스 격렬한 운동을 시작했다. 2분의 정적. 드르륵. '물론이죠! 제가 지금 걸게요.' 그렇게 나딘과 민하의 역사적인 영상통화 연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날이후 민하의 인생에서 나딘은 빼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민하에게만 절친이 생긴 건 아니었다. 나딘과의 소통을 위해 나딘의 엄마 사라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나는 어느새 사라와 절친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부다비를 떠나는 날까지 그녀의 가족들과는 깊은 연을 맺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고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 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아부다비를 떠나던 2024년 2월 끝인 줄 알았던 우리들의 우정은 이제 시작이었다. 사라는 2024년 7월 딸들을 데리고 한국에 방문했다. 나는 사라가 한국에 와 있는 기간동안 두 을딸 데리고 상경하여 사라와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사는 창원에도 며칠 머무르고 싶어했다. 그녀는 창원의 랜드마크 용지호수 앞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그녀의 가족은 창원 우리집에 놀러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근교의 놀이공원 로봇랜드도 함께가서 물놀이를 하고 놀이 기구를 타기도 했다. 또 라나를 위해 주하의 친구들을 불러내어 편의점에서 모이기도 했다. 라나는 한국 친구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노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라나의 생일이라 한국 친구들과 케잌의 촛불을 함께 불고 같이 코인노래방에 가서 놀았다. 그야말로 K-컬쳐 체험을 한 것이다. 사라 가족이 한국에 온 것은 내가 4년 만에 한국에 귀임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라 나도 한국에 핫플레이스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감이 없었을 때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괜찮아, 혜경. 나는 너와 주하, 민하를 보러 가는거야. 아무런 부담 가지지 말고 아부다비에서 한던 것 처럼 너의 동네에서 같이 밥먹고 차 마시자' 그래. 그녀와 있을 때 나는 멋진 곳을 가야할 이유도 좋은 음식을 딱히 먹어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와 있으면 그곳이 무릉도원이고 우리의 대화가 맛있는 음식보다 깊은 전율을 가져다 주니 그녀의 말이 맞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도 부끄럽지 않고, 어색하지 않은 나의 진정한 친구 사라가 있어 나는 참으로 감사하다. 우리와 딸들의 우정은 변치 않고 시간이 흐르며 숙성되는 와인처럼 깊어지고 향긋해지겠지? 이러니 내가 아부다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고마워. 아부다비. 언젠가는 아부다비에 느끼는 고마움을 전할 길이 있겠지? 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소망이 실현되기를. 나도 누군가의 간절함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 날의 나처럼 긴장해서 떨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