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흔을 견딘 시간, 아부다비> 2-11

2-11 2023년 봄. 안녕, 아부다비


우리 가족은 2023년은 아부다비에 1년 더 남으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이 급물살을 타며 다시 한국으로 복귀하는 계획은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되었다.


한때 센세이셔널 했던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 보면 사람의 내면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자아가 여럿 등장해서 그들이 각각 감정을 느끼고, 나의 결정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한다. 내 안에는 '갑작이'가 있다...


내 갑작이는 살면서 거침없이 나를 새로운 장소에 데려다 놓기도 하고 도전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아이는 참 눈치가 없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독단적인 주도를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뜨아한 반응도 인지 못하고 심지어 상처까지도 둔탁하게 느끼는... 갑작이의 불건강한 부분은 나의 T와도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다.


'갑작이'가 이번에는 많은 이들을 아프게 했다. 나마저도 그 이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깊게 마음이 시큰시큰 앓아야 했다. 참으로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어찌 되었든, 시작은 가족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던 2022년 여름 즈음이었다. 한국 방문 중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슬며시 떠올랐다.


그러다 2022년10월 나의 절친 사라와 누라 또 우리들의 첫째 아이들과 함께 했던 아테네에 여행에서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간다 VS 만다'의 치열합 접전이 여행 내내 머릿속에서 계속 되었다. 아테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노트를 펴고 두 선택지를 적어 놓고 이것 저것 따지기 시작했다. [중략]


아테네 여행에서 돌아온 후부터 굳어진 마음은 10월 즈음부터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나의 '퀵클리이(quickly)'가 일을 시작했다. 전화와 왓츠앱으로 국제이사 업체를 컨택하고 다니던 학교 봉사활동을 정리하고 아이들 학교에도 귀임 사실을 알리고 주변에도 이러한 결정을 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멀쩡하게 학교를 가고, 또 하교해서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돌아간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 마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너무 마음이 아리고 시렸다... 이 것이 아부다비와의 끝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어라도 해야 했다. 허무맹랑한 계획일지라도 나와 아이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고심 끝에 아이들을 불러서 앉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너네를 데리고 1년에 한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곳, 아부다비에 방문하겠다고. 그러자 조금은 화나고 놀란 아이들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아주 조금.. 미세하게..


그리고 아파하고 있는 나의 작은 F에게도 아부다비와의 헤어짐이 이별이 아닌 형태를 바꾼 다른 사랑의 시작이라고 위안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래알처럼 작은 내 안의 F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나 같은 강철 T에게 두 팔 벌려 따스하게 안아준 이 곳을 도저히 놓아줄 수 없다고. 하지만 내 멘탈이 무너지면 아이들을 이끌고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안간힘을 써서 T를 끌어올리고 F를 달래며 남은 날들을 보냈다.


우울한 할로윈과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원래 계획은 12월에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2월까지 학기를 하고 아부다비를 떠나는 전날까지 아부다비에 있기 되면서 오히려 나와 주변은 오히려 우리가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게 일상은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떠나는 날이 되었다.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나와 아이들, 내 친구들, 아이들이 친구들은 장례식장을 방불케 곡소리를 내었다. 정말로 이 것이 장례식인것만 같았다. 영영... 이곳을 떠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게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어질어질 머리가 아프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금방이라도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정말 떠나기 싫었다. 방법만 있다면 내 소중한 친구들이 있는 아부다비에서 Happly ever after(그 후로도 즐겁게 살았습니다)하고 인생을 이 곳에서 마무리하고 싶을 만큼 아부다비가 좋았다. 하지만 나의 짐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한국으로 실려가는 중이었고, 돌아가서 살 아파트의 계약이 끝난 상황이었다. 아부다비에서 살던 집도 정리했고, 아미티에서 딸들의 학적도 모두 정리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모든것을 뒤집고 싶을만큼 아부다비를 떠나기 싫었다. 그래도 내가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딸들은 더 무너질 것임을 알기에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힘겨워하는 딸들을 데리고 기어이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2023년 2월 10일은 너무나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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