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흔들리는 마흔을 견딘 시간, 아부다비>

3-2 엄마가 보여 줄게- 태권도 유단자가 되다

2023년 2월10일, 아부다비에서 보낸 4년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오기 싫었다.

그때는 한국이 내 나라같지 않았다.

낯설었다.

내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이 없을 것만 같았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 것 같았다. 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부다비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면 외국 어디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외국인 거주비율이 높아서 문화적 포용성이 높은 곳이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다문화국가에 진입하는 단계이다. 202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비율은 4.88퍼센트이다. 2023년 자료에 따르면 UAE의 경우 88.5퍼센트가 외국인이다. 하지만 UAE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세계에서 외국인 거주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2위다. 이와 같은 여건의 나라로 이주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다양성이 보장된 나라로 가고 싶었다.


교사 신분으로 외국에서 근무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해외에 있는 한국학교나 한글학교에 근무하는 방법이 있다. 재외한국학교나 한글학교에 근무하기 위해서 몇 가지 요구되는 것들이 있다.


첫 번째, 기본적으로 업무능력을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곳은 외국이라 교육부업무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다. 2005년 내가 막 발령 받았을 당시의 학교의 상황보다 더 열악하다. 대사관과 협업하여 진행되는 활동들도 많다. 외국에서의 한국공기관으로서 민간외교사절단의 역할을 겸하기에 업무량과 책임감, 부담감이 상당하다.


두 번째, 영어와 해당 나라의 언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 보통 학교에서의 수업은 영어사용자 보조교사와 한국인 담임교사가 함께 진행한다. 또한 해당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생들 또는 학교의 직원들과 소통해야하기에 해당 지역 언어도 기본은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한국학교에서는 방과후활동이나 대외활동에 학교의 교사가 직접 참여해야하는 한다. 이때 한국의 특색을 살린 특기가 있어야 한다. 태권도나 사물놀이, 악기 연주 등이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외국살이에서 오는 불편함과 외로움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학교인 만큼 동료직원들은 한국인일 것이다. 하지만 학교나 지역의 한국인 커뮤니티는 좁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충족할 수 없는 수준일 수도 있다.


나는 위의 네 가지 중 첫 번째와 세 번째 항목에서 자신이 없었다. 13년의 긴 휴직기간 때문에 학교에서의 업무처리능력이 부족한 상태였고 한국의 특색과 관련한 특기가 없었다.


2023년 2월 10일에 한국으로 귀임을 하고, 2월23일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2023년 하반기에 복직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잘못되어 2024년 상반기에 복직하긴 했지만. 나에게 부족한 능력을 보완할 수 있는 시간은 한 학기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2월 28일에 시작하는 온라인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 수업> 을 수강신청했다. 한국어교원자격증 2급 취득 강좌를 신청했다. 집 앞 태권도 도장에 찾아가 태권도도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나씩 테트리스처럼 필요한 능력을 쌓아가면 언젠가는 나와 자녀들이 원하는 외국살이를 다시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때는 그게 절실했다. 한국이 낯설게 느껴지는 만큼 나의 절실함도 더해갔다.


결국 2023년 상반기에 나는 태권도 1단 국가공인자격증을 취득했고, 태권도로 라인드로잉을 하겠다는 부푼 꿈을 꾸며 아이패드로 그림그리기 수업도 마쳤다. 2024년 3월에는 한국어교원 2급 자격증이 발급되었다.


이런 시간들이 치열하게 나를 갈고 닦은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 시간들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목표가 분명했고, 그것을 위해 어떤 것도 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아부다비에서의 마지막 날 공항에서의 장면만 떠올리면 어떤 것도 못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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