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흔들리는 마흔을 견딘 시간, 아부다비>

3-1 억지로 돌아온 한국 귀임 -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4년이 걸렸다.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귀임 직전의 아부다비는 내게 천국이었다.

딸들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바쁘고 경쟁적인 한국에 돌아와서 사는게 맞는지 여러번 자신에게 되물었지만 영원히 아부다비에 살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일이었다. 다만 그것이 조금 빨리 당겨졌을 뿐, 조금 급하게 진행되었을 뿐이다. 한국은 차가웠다. 2월의 공기가 그러했고 사람들의 표정이 그러했다. 딸들은 매일 중동 쪽을 보며 잠이 들만큼 아부다비를 그리워했고, 나도 밤마다 아부다비의 해변을 거니는 꿈을 꿨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무척 컸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오래 사로잡혀 있을 만큼 현실이 녹록하지 않았다.


국제 이사 후의 이삿짐 정리와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 구입과 딸들의 학교 재입학 등을 처리하느라 몸은 분주하고 지친채로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양은 또 무심히 떠오르고 나는 그렇게 내 나라에 돌아와서도 이방인처럼 하루 하루를 보냈다.


베넷은 문화적 감수성의 발전단계를 6가지로 나누었다. 거부, 방어, 과소평가라는 자민족 중심단계와 용인, 적용, 통합이라는 민족상대주의 단계가 그것이다. 이는 새로운 문화를 접할 때 개인의 반응을 지표로 나타낸 것인데 문화적인 충격이 가해질 때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낯선 문화에 대해 접해 본 경험이 적을 수록 거부, 방어 등의 모습을 보이고 그것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용인, 적용, 통합의 단게로 나아간다.


나는 한국을 떠나기 전 3단계 과소평가와 4단계 용인의 중간에 어디쯤 있었다. 한국에 살 때에 나는 낯선 문화를 접하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초월적 보편성을 가지고 현상을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부다비에 가서 살게되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용인의 단계로 넘어갔다. 용인은 타인의 행동과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단계이다. 용인이 이루어지자 타인에게 공감하고 다원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적응으로 또 통합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4년만에 다시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언제 한국에 살았냐는 듯 거부의 반응을 제일 먼저 나타냈다. 베넷은 해외체류 후 재입국의 문화충격도 같은 단계를 지난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론대로 내 나라에서 거부, 방어, 과소평가, 용인, 적용, 통합의 단계를 다시 밟았다.


가족과 친구도 예전같지 않았다. 아부다비에서 전화통화로 이야기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한국에 오자 그들과의 소통이 불편해졌다. 왜 그랬을까? 첫째, 그들은 내가 달라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의 나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생각도 행동도 그렇다. 아부다비에 살면서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새롭게 접했던 다양한 문화, 그리고 영국학교에서의 근무 경험으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러한 것들이 겉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은 나의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5년전의 나 자신이나 10년 전의 나 자신은 내가 아니다.



사람은 생각과 행동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으니, 은연중에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생각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만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와 생각이 통하지 않아 답답함과 우뚝 솟은 벽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도 그러했을것이다.


그들과의 커피 브레이크에서 나누는 관심사는 재테크, 아이의 성적, 건강, 양가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 주변인들이 살고 있는 방식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등이 주를 이루었다. 이상했다. 그곳에는 내 이야기가 빠져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나는 요즘 어떤 기분인지, 내가 조만간 하고 싶어하는 일들과 방향은 어떠한지 등이었다. 여기에서 가지를 뻗어나가 나의 가족이나 재정이나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결국은 내 이야기였다.


아부다비에서는 친구들은 만나면 우리는 서로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적어도 내가 만나는 이들과는 그랬다. 우리가 낯선 곳이라는 특수한 환경 안에서 만나서 그랬을까?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은 늘 뒤따라왔다.


그래서 그들과 만나지 않고 평소 혼자 산책을 하거나 집을 치울 때도 때때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내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상태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해 몰두했다. 나는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또 사랑스럽게 대하려고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들을 판단하여 나만의 아름다운 인생을 그려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나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연민과 사랑을 보여주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러자 나의 딸들은 약속이나 한듯 나와 비슷한 생각과 방향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자기 자신에 대해 소중하여 여기고, 두번째로 다른 이들이 좋다거나 옳다는 것에 대해 비판적사고를 가지고 자신의 취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밀고 나가려고 노력하고 세번째로 자신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과 연민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 좋은 점은 애쓰면서 살아가지 않아도 인생이 즐겁다는 것이다. 삶의 방향과 방식이 남들이 정한 기준에 있지 않으니까. 나는 매일 매일 나의 기준과 방향을 설정하고 그것에 따라 살게 된다. 나의 생각과 행동과 생활이 온전히 나의 빛을 띈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 또 여유도 생기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도 각자 이러한 자기만의 고유성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존중하게 된다. 이렇게 각자가 저마다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면 함께 하는 시간도 더하고 뺄것 없이 충만하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내 주변에는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다행히 한국에 돌아와서도 적응기간이 지나자 나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함께 하는것이 좋은 사람들과의 동행은 축복 그 이상이었다. 그것이 나의 한국에서의 생활을 다시 일으켜세우는데 큰 힘이 되었다.


아랍어를 같이 공부하는 신 선생님과 엔팁이 초등교사로 살아가는 방법의 공저를 했던 정 선생님 그리고 한국무용의 길로 이끌어주신 진 선생님, 해리포터와 AI로 마법같은 영어의 세계로 강의의 수강자들로 만난 오해영 식구들, 그리고 온라인누리교실에서 해리포터 원서 수업으로 만나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경남 전역에 살고 있는 나의 제자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글벗들... 이 외에도 나와 정신적인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멋진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색찬란한 빛을 가지고 나의 인생책을 쓰고 있다.


아부다비에만 있을 것 같았던 내 사람들이 한국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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