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부다비 희비희비(喜悲喜悲)

아부다비에 온 지 3개월이 흘렀다.

아이들의 아빠는 주중에는 3시간여 떨어진 바라카 원전에서 일하고 주말마다 집에 왔다.

주중에는 아직 아부다비라는 낯선 곳에 나와 아이들뿐이었다.

황량한 사막에 지어진 화려한 빌딩들 속에서 길 잃은 양처럼 나는 불안했다.



처음 한 달 동안 우리 가족은 호텔에 머물렀다.

첫 번째 숙소는 알 만젤 호텔이었다.

아부다비에서 제일 큰, 와다 몰이 걸어서 10분이 안 되는 거리에 있어서 편리했다.

호텔 내부는 원룸보다 조금 더 큰 크기였고 주방 시설이 있었다.

방에는 창문이라곤 작은 것 하나밖에 없었다.

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바닥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겨울이지만 따가운 사막의 한낮 햇살이 방을 비추면 카펫의 먼지들이 공중으로 부양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들은 가볍고 우아하게 이리저리 흩날렸다.

그 움직임만 보면 퍽 감상적인 장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지저분한 먼지가 날리는 낯선 호텔 방일 뿐이었다.


조식은 더 형편없었다.

그래도 나는 모두 잠든 시간에 일어나 악착같이 일어나 매일 같은 메뉴의 요거트와 빵 한두 개를 놓고 커피를 마셨다.

유리창으로 비치는 내 모습이 퍽 처량했다.

‘낯선 땅에 굳이 기어이 와서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나의 강력한 T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와 F를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버텨. 지금 나에게 감성 따위는 사치야.’


라며 서글픈 다짐을 했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아침은 잊지 않고 다시 왔다.

그래. 이렇게도 시간은 흐르고 날은 지나간다.


나머지 끼니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실어 온 레토르트 식품으로 때웠다. 캔에 들어 있는 햄, 참치, 장조림 같은 것들, 또 팩에 들어 있는 미역국, 황탯국, 컵밥 같은 것들을 즉석밥에 김을 곁들여 먹었다. 언제까지 이것들을 먹어야 하나 싶어 한숨이 푹푹 나올 때면 숙소의 건너편에 있는 와다 몰로 향했다.


와다 몰에는 다양한 식당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다양한 식당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익숙한 맥도날드나 KFC, 던킨 도넛 같은 매장들만 보였다. 나중에는 미국식 중국식당 판다 익스프레스나 조식으로 유명한 폴 카페나 라 브리오시 같은 식당들도 자주 이용했다. 당시에는 그런 식당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도 맥도날드가 있어 딸들이 좋아했다. 그녀들은 늘 너겟과 피치 아이스티 그리고 스윗 앤 사워 소스를 주문했다. 나중엔 마법 주문처럼 욀 수 있게 될 정도였다. ‘너겟 나와라,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2주 후 호텔을 옮겼다. 우리의 두 번째 호텔은 알 라하 비치 호텔이었다. 아부다비는 아래와 위로 길쭉하게 생겼는데 그 제일 북쪽 끝, 두바이와 가까운 라하 구역에 있었다. 그곳은 제법 괜찮은 호텔이었다. 작지만 해변을 끼고 있고, 야외 수영장과 어린이 수영장도 있었다. 그중 가장 백미는 그곳의 밥이었다. 조식, 중식, 석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조식과 석식을 추가하여 호텔 식당 Sevilla 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큰딸의 도시락을 싸기가 힘들어 조식에서 빵 몇 개를 가져와서 도시락통에 넣어 학교에 보내곤 했다. 이 호텔에서 2주를 더 보내고 우리 가족은 드디어 아부다비에서의 첫 집으로 입주하게 되었다.


리한 하이츠라고 불리는 고층 아파트였다. 한국식 아파트와 별 다를 바 없었다. 야외 수영장과 놀이터가 있기는 했지만, 규모가 작았다. 장점이라면 아부다비의 중간 즈음에 자리하고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고 바로 앞에 ‘자이드 스포츠 시티’라 불리는 체육시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집의 통창으로 아부다비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화이트 그랜드 모스크’가 보인다는 점 정도이다. 하지만 이곳의 기운이 나와 맞지 않았는지 여기에서 보낸 첫 1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자주 아팠다. ‘스칼렛 피버’ 라고 불리는 성홍열은 이제 한국에서는 없어진 질병이다. 아부다비에 도착한 지 얼마지 않아 아이들이 돌아가며 성홍열에 걸렸었다. 혀가 보라색으로 변하고 고열이 났다. 아이들의 아빠는 바라카에서 일하고 있었고 주말에만 집에 왔다. 나는 혼자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다행히 병원을 수소문하여 방문했고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아 보였지만, 현지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았다. 그 약을 먹고 다행히 아이들은 나아졌다. 하지만 나의 절망과 우울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의 창밖으로 보이는 화이트 그랜드 모스크를 볼 때면 내가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있다는 기분이 더 강하게 들었다. 여기는 알라딘이 양탄자를 타고 주변을 날아다닐 법한 곳이다. 그런데 내 기분은 한복을 입은 내가 양탄자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양탄자는 내 두 발이 땅에 붙지 못하도록 무심하게 나를 애태우며 이곳을 빙빙 돌아다녔다. 나는 이곳에 정착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마음속에 활활 불타오르는 날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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