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한국 현실이 되기까지


하지만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막상 UAE는 메르스 말고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고작해야 석유 산출국이라는 것 외엔 없었다.

해외 이주라는 중대한 결정을 나 혼자 할 수 없어 가족과 지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 보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열에 아홉이 반대했다.

사막 한가운데의 뜨거운 나라에 가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했다.

고생을 사서 왜 가냐며, 종교와 문화도 달라 생활하는 것이 어려울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한국에서 불편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그러한 리스크를 뭣 하러 감수하느냐고 했다.


이때, 기울고 있던 나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게 된 건 아빠 덕분이었다.

아빠는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주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가라고 하셨다.


첫 번째, 새로운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하셨다.

우리 인생에 있어 기회는 왔다가 사라진다.

아빠는 이번 아부다비행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셨다.


두 번째, 아이들 아빠가 근무하게 될 바라카 발전소 근무자들을 위한 숙소와 식사 등이 제공되니 지낼 만할 거라고 하셨다.

숙소가 열악하기는 하지만 조그마한 개인 방을 받고 그곳에서 식사와 빨래 등을 해결해 주니 남자 혼자 살기에는 나쁘지 않다는 말이었다.


세 번째, 그래도 주말이면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좋다고 하셨다.

대부분 직원이 금요일 저녁이면 회사에서 마련해준 셔틀버스를 타고 3시간여를 달려 아부다비 시내에 와서 가족과 주말을 지내고 일요일 저녁에 가는 스케줄로 일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유년기의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맞아. 힘든 일도 있겠지만 추억을 만들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될 것 같다. 아빠의 말은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다. 그 멋진 논리에 우리는 모두 설득되었고 머지않아 나와 아이들은 한국의 짐들을 아부다비로 모두 보내고 텅 빈 아파트에서 캠핑하듯 두어 달을 살다 2018년 12월의 마지막 날을 며칠 남겨두고 아부다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후에 다가올 무지막지한 향수병과 모두를 숨 막히게 했던 그곳에서의 코로나와 매일 마주해야 하는 언어의 장벽은 상상하지도 못한 채로. 그렇게 우리의 우당탕탕 아부다비살이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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