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흔들리는 마흔을 견딘 시간, 아부다비

2-4 2019년 겨울 아부다비에서 만난 나의 소울 시스터, 티나

2019년 겨울, 우리 가족이 아부다비에 온지 1년쯤 되었을때였다. 여느 픽업 타임과 같이 나는 아미티 카페에 앉아 카페라떼를 마셨다. 주하의 반 친구 키아라의 엄마, 나이지리아 출신 비키다. 나는 그 즈음 아프리카 출신의 엄마들과 어울렸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묘하게도 아프리카의 정서가 유럽과 달리 한국과 닿은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서양 유럽인들의 문화는 우리라 상반되어 매력적이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니어를 어른으로 생각하고 존경하고 따르며, 가족 안에서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 등에서 우리와 비슷해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은 아이들을 대할 때도 엄하고 위계질서를 강조한다. 반면에 유럽인들은 어른과 아이 모두 동등하게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며 고유의 영역이 있어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의 영역을 지켜주고 기다려주는 편이다. 나는 서양적인 정서의 민주적인 부모가 되고 싶다가도 딸들이 나에게 바락바락 대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녀들에게 순종을 강요하기도 했다. 이렇다할 육아관이랄것이 없고 이랬다 저랬다 했다. 딸들은 꽤나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 진심을 다해 그녀들을 대했고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니 그들도 후에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해주었다. 진심을 통하고 옳은 것을 하다보면 그것을 알아주는 때가 오는 거겠지. 그래도 거칠은 육아관은 다행히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AIS는 상당히 다양한 출신국의 아이들이 섞여 있는 학교였다. 다양성 (다이버시티-Diversity)면에서는 최고였다. 학생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핀란드, 호주, 미국, 캐나다, 요르단, 부탄, 말레이시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페인, 터키, 인도, 이라크, 팔레스타인, 브라질, 그리스, 베네수엘라 등이었다. 딸들은 각국 출신 친구들과 부대끼며 국제 시민이 되어갔다. 나는 그런 딸들과 같이 지내면서 내가 가지고 있떤 편견과 아집들이 조금씩 깨지고 다듬어지는 경험을 했다. 딸들은 편견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었다. 그녀들의 친구들을 만나며 경험하는 수많은 나라를 관통하는 문화와 관념을 아집이라는 틀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나름대로 외국 문화를 많이 접하고 외국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기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딸들과의 일상적인 대화 중에서도 가끔 내 안의 꺼끌꺼끌하고 단단한 알맹에 같은 아집들을 꽤나 많이 느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나의 문화권에서 진리라고 믿고있던 것들이 다른 곳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므로 편견을 조심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때로는 부끄럽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인가 말랑해져 외부 자극을 부드럽게 수용하고 있는 성숙한 내 자신을 마주할 때면 유연함의 힘이라는 것이 이런것인가 하고 생각되었다. 이것은 비단 외국 문화를 접할때만 깨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변화시킬만한 진심어린 덩어리는 언제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어느 날 비키가 케냐 출신의 친구를 소개해 준다며 7척 장신의 늘씬한 미녀를 인사시켜 주었다. 그것이 나와 티나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티나는 깐 계란같은 매끈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다. 그리고 말을 할 때면 정말이지 조곤조곤 속삭이듯 했다. 비키의 호탕하고 크고 우렁찬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작고 나즈막한 그녀의 목소리는 오히려 듣는 사람이 집중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성격은 그녀의 목소리와 같아 우뚝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주변을 물들였다. 둘이 함께 있을때면 그 맑고 따뜻한 성품이 목소리를 통해 고고하게 빛났다. 함께 있으면 참 아늑했다. 내가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었다. 온전히 나로 있어도 그런 나를 말없이 안아주는 그녀였다.


티나는 애석하게도 아부다비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2년 만에 아부다비를 떠났다. 벨기에 대사관에 근무하는 그녀 남편의 발령때문이었다. 그녀의 벨기에 귀임이 정해진 날. 우리는 야스몰의 흔한 커피숍 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카페 폴(Paul)이었던가. 아무렇지 않게 그녀가 내게 귀국 소식을 전해왔다. 그녀답다. 언제나 맑게 우린 차처럼 담담하게 어떤 이야기든 풀어내는 성격이다. 내게는 순간 침울함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예의 그 담담함으로 산뜻하게 그 분위기를 이겼다. 티나가 제안했다. 이제 갈 날은 정해졌고 우리는 남은 날동안을 매주 기념하며 특별한 이벤트를 하자고. 그로부터 매주 금요일 나는 그녀를 만나 특별한 추억을 들을 만들어 나갔다. 어느 날은 내 집에서 시멘트를 섞은 캔버스 유화 페인팅을 하기도 하고 다른 날은 Mina Market(미나 시장)에 가서 꽃과 풀을 구경도 하고 어시장에서 구운 새우를 사먹기도 했다. 우리는 철모르는 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야스몰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필리핀 살롱에서 10개 서비스 100디르함 패키지를 사서 매니큐어를 받거나 마사지를 하기도 했다. 가는 시간이 야속할 만큼 진솔하고 진심어린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그녀가 아부다비를 떠나야만 하는 날, 티나네 가족은 사디야트에 있던 주택의 짐을 모두 보내고 아부다비 시내 메리야트 레지던스에서 짧게 체류한 뒤 벨기에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가 사디야트에서 짐정리를 할 때 나는 곁에 있었다. 옷가지들 속에서 작은 옷들을 추려내어 주하 입으라고 챙겨주었다. 갖은 양념들 중에서 가져가지 못하는 것을 모아서 내게 주었다. 이케아에서 산 테이블이라고 또 작고 귀여운 라탄 테이블 두 개를 주었다. 눈물이 자꾸 났다. 가지마 티나. 나는 이제 어떻게 하라고. 너 없이 아부다비에서 황량한 마음을 어떻게 누구에게 가서 쏟아놓을까. 은은한 호수같은 니가 있어 나는 언제가 울고 싶을 때나, 가장 기쁜 순간에 한 방울 나의 일상을 거기에 떨어트리곤 했는데. 이젠 어쩌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내 안에 싱크홀이 생긴 것 같았다. 극강의 T인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그녀는 AIS 출입증과 아이들이 학교 식당에서 사 먹을수 있는 식권을 내게 선물처럼 주고 떠났다. AIS 교문 앞 흙길 주차장에서 꺼이꺼이 울며 그녀를 보내주었다.


한 달이 지났을까. 그녀가 왓츠앱을 보내왔다. 벨기에는 무척 춥다고, 봄인데 봄이 아닌 유럽 북부의 날씨였다. 따뜻하다 못해 더워지고 있는 아부다비와는 상반된 그곳의 풍경을 보는 것이 생경했다. 하지만 티나는 크림색 터틀넥을 입고도 예뻤다. 그 후로도 그녀와 가끔 왓츠앱 통화를 한다. 그녀와 통화하면 몇 달만에 통화해도 어제 만난 것처럼 낄낄대고 웃으며 어린 아이로 돌아간다. 2024년 복직을 하고 5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음악 시간에 '잠보'라는 케냐 노래가 나왔다. 티나가 떠올랐다. 이건 함께해야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침 출근길에 티나에게 왓츠앱 전화를 걸어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너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그리고 반에 도착한 후 아이들에게 잠보 부아나를 부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었다. 나의 케냐친구에게 우리가 배운 노래를 불러주는게 어떻겠냐고.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핸드폰으로 다시 왓츠앱 전화를 걸고 티나와 연결되었다. '티나야. 들어봐.' 나는 아이들과 '잠보, 잠보 부아나'하며 노래를 이어갔다. 티나는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어 '잠보'를 같이 불렀다. 곧 1교시가 시작되어 짧은 통화는 끝이 났지만 그 여운이 깊고 진하게 머물렀다. 나는 또 언젠가 아무 날 아무 시간에 왓츠앱으로 그녀에게 영상을 보낼 것이다. 그녀의 다정함이 고픈 날에. 그녀의 진솔함이 그리운 날에. 나는 또 왓츠앱의 플러스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머지 않은 시간에 한 름여 산타의 선물처럼 그녀의 영상이 도착해 있겠지. 고마워 티나. 나의 마음 속까지 어루만져 주어서, 어지럽던 나의 마음의 흙탕물 위에 맑은 물을 콸콸 부어주어서. 너라서 아부다비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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