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의 이야기

망상

by 지인

TV를 보고 있던 D에게 말릴 새도 없이 G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뛰어가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뜯어 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흥분한 G를 떼어내며 동시에 공격받아 격분한 D를 등뒤로 밀어낸다. 그사이 다른 병동의 근무자가 뛰어와 나에게 가세했다. 둘을 간신히 떨어 뜨려 놓고 상태를 살핀다. D는 G가 달려들면서 잡은 멱살과 그새 한 대 맞았는지 뺨이 빨갛게 손자국이 생겼다.


조용히 프로야구를 보고 있다가 봉변을 당한 D는 성격대로 욕을 퍼부으며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평소에도 분노의 기준이 없던 그는 느닷없이 당한 공격에 당황하지도 않고 곧장 화를 폭발시켰다. 부지불식간에 공격을 당해 분노하여 날뛰기 시작한 D를 일단 자신의 병실로 데려갔다.


다른 병동의 근무자가 일단 D를 맡고 있는 동안 병실로 데려간 G를 일단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G는 이제는 얼굴이 시뻘게져 폭발할 것 같았다. 분노한 그는 입에 침을 튀기며 D를 욕하고 있었다.


G는 자신이 50년이나 이곳에 갇혀 있다고 했다. 어느 날 부산에 서면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D가 정체불명의 술을 줘서 마시고 잠들었는데 깨보니 이곳이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른 층의 S도 D와 공범이라며 처음 듣는 이름을 대며 그들이 자신을 감시하려 이름을 바꾸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서 세종대왕인 자신의 아버지와 그 친구 조지 부시대통령에게 연락해 자신을 풀어주라고 하라고 했다. 자신이 풀려나면 나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임명하겠다고 했다.


분명한 망상이었다. 둘 사이에 끼어들어 말리느라 애를 정말 많이 썼는데 허탈한 감정이 올라왔다. 우선, G는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입원한 장기 입원 환자 이기는 했지만 50년이라는 기간은 너무 허황되고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세종대왕이니 부시 대통령이니 하는 말은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오히려 색다르게 다가왔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머릿속을 정리한 뒤 G를 침대에 앉혔다. 의료적 처치는 주치의에 처방에 따라 간호사가 시행할 것이다. 그전에 그를 진정시켜야 했다. 일단 망상에 대해 말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상태를 볼 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망상을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그러는 동안에도 반대머리인 그의 정수리까지 시뻘겋게 된 그는 이제 입에서 거품이 일어났다. 그는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자신이 억울하게 수십 년을 갇혀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밖에서 흥분한 D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려왔다. 그를 달래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의 목소리도 들렸다.


평소의 G를 생각해 보자면 그는 작은 키에 반대머리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장년의 남자였다. 간혹 뜬금없이 손에 컵라면이나 커피 믹스 몇 개를 쥐어주는 사람이었다. 가뭄에 콩 난다는 말처럼 가끔 망상을 표현하고는 했지만 대부분 웃으며 넘기는 상태였다. 오히려 오늘이 특이한 경우였다.


평소와 다른 그의 상태를 마주하며 몇 가지 그를 진정시킬 방안을 떠올렸다. 잠깐사이 여러 방안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G는 D와 S를 공범이라며 자신을 억울하게 가둔 병원을 저주했다. 푸틴을 욕하고 오바마를 욕했다. 뉴스에 나온 인물들을 전부 욕할 기세였다. 분노로 떨리는 몸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침대에 앉은 그에게 차가운 물을 한잔 따라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눈을 보며 목소리 톤을 조금 높게 해서 그의 주의를 나를 향하게 했다. 간이 좋지 않아 황달 증세로 노랗던 힌자에 핏발이 섰지만 일단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분노를 담아 욕설을 내뱉던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이제는 나를 향해 억울함을 담아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의 망상으로 인한 분노가 원인이었지만 그에게는 망상이 현실이었기에 그의 하소연은 절절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이미 그의 하소연에는 D를 향한 분노는 사라져 있었다. 그저 자신이 오랜 기간 갇혀 있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슬픔, 절망이 느껴졌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폭발할 것 같았던 그의 얼굴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이제는 슬슬 그에게 망상에 대해 말해도 될 것 같았다. 그에게 물었다. 오늘 날씨가 어떻냐고. 잠시 망설이던 그는 곧 좀 덥다고 했다. 나는 여름에 소매가 긴 옷을 입어서 그렇다고 하며 반팔 셔츠로 갈아입자고 권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곧 그럴까 하며 사물함에서 옷을 꺼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입에서 하소연은 멈춰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그에게 주치의의 처방을 시행하기 위해 간호사가 다가왔다. 간호사 옆으로 D를 진정시킨 동료도 같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보였다. 흥분한 G와 같이 D도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방을 끝낸 간호사가 G에게 공격한 이유를 묻자 아까보다는 차분해진 모습으로 망상에 대해 말했다. D와 S 때문에 병원에 갇혔다는 망상은 여전했다. 나는 아까 D와 S가 사실은 본명이 다른 사람이라는 그의 망상에 접근해 보기로 했다.


먼저 D가 언제부터 감시했냐고 물었다. G는 거의 20년 정도 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D가 감시하는 20년 동안 왜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D는 입원한 지 이제 3년 정도 됐다고 했다. 사실을 말했다. 그는 깜짝 놀라는 모습으로 그렇냐고 물었다.


G와 나는 내가 입사하면서부터 인연을 맺었다. 거의 9년 정도 되는 기간이라 어느 정도 신뢰가 형성되었는지 내가 전달한 사실에 놀라면서도 부정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S는 다른 층에 있는데 감시를 잘할 수 없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G는 그래요 하는 반응이었다.


나는 그들이 G가 말한 이름의 인물들이 아니라 그저 그의 주변에 있던 다른 환자들이라고 했다. G는 내 말에 약간 찜찜해하는 표정이었다. 내심 너무 오래 망상에 대해 얘기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를 돌릴 필요가 느껴졌다. 그래서 좀 쉬었다 흡연을 하러 가자고 권했다. 그는 웃으며 고맙다고 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1시간 정도 잠을 잔 G의 상태는 망상에 빠져 분노에 떨던 모습이 사라진 평소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듯 자신이 세종대왕의 아들이라는 말은 반복했다.


D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외상도 보이지 않았고 고통이나 분노를 호소하지도 않았다. 기억력 감퇴가 있어서 인지 G에게 다가가 농담도 주고받는 것이 아까의 일은 다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이제야 나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문득 망상이라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현실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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