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충전(下)
의료원에 도착해서 J를 정형외과로 데려갔다. J는 아무것도 모른채 기대에 찬 얼굴로 따라왔다.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J의 차례가 다가왔다. 속았다는 것을 안 J가 난리를 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허리와 다리의 X-ray를 찍고 나서 J의 얼굴을 살피니 슬슬 의심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왜 고환을 찍지 않지? 라며 중얼 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눈치채고 고함을 지를것 같았다. 골치가 아파왔다.
드디어 J의 차례가 되었다. 나도 따라 들어가야했다. 나는 정말 같이 들어가기 싫었다. 난리를 치는 J를 막아야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예상대로 J는 진료를 하는 순간 외진을 온이유가 짝고환수술이 아닌것을 깨닫고 짜증과 분노를 담아 악을 썼다. 그래도 본원에 있을때처럼 바닥에 주저않아 발버둥을 치지는 않았다. 다행히 진료를 담당한 의사가 이런상황에 익숙한듯 동요하지 않고 빠르게 처방을 내어 주었다. 외진 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진료실에서 대기실로 J를 데려온 후에도 J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고환 수술을 해야한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J와 그를 데려온 우리를 향한 시선이 날아와 박히는듯 따가웠다. 사방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쓰고온 마스크가 입과 코뿐만 아니라 얼굴을 전부 가려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다행인점은 J는 목소리가 클뿐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환자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화가나더라도 주변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점인지 이상황에 맞닥드리고 서야 고맙게 느껴졌다. 추가적인 일정이 있었지만 더이상 J를 막을수가 없었다. 결국 나와 J는 엠뷸런스로 먼저 돌아와 외진팀을 기다렸다. 엠뷸런스로 가는 길에도 J는 입을 쉬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큰 목소리로 분노를 쏟아내니 J의 짝고환수술예기가 의료원복도를 시끄럽게 울렸다.
분노한 J를 달래서 겨우 본원으로 복귀했다. 돌아오는 동안에 조금 진정된듯 J는 투덜거리기만 할뿐 더이상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너무 피곤했다. 긴장으로 곤두선 신경이 이제야 좀 가라앉는듯 했다. J는 자신이 속아서 외진을 갔다온것 보다 자신이 원하는 고환 수술을 지금 당장 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화가 난것 같았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짝짝이 고환에대해 열변을 토했다. 했던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는데 듣는것많으로 진절머리가 났다. 결국 나는 열변을 토하는 그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관심을 보이기로 한것이다. 그에게 고환이 어떻게 불편하냐고 물었다. J는 아프지는 않지만 짝짝이라 균형을 맞추려면 지금당장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 작은 것이 무슨 영향을 주냐고 하자 단호한 말투로 '넌 몰라. 나는 다 알 수 있어.'라고 했다. 그러면 아프면 수술하러 가자고 하니 내 의도를 눈치챈듯 비웃는 얼굴로 웃기는 소리하지말라고 했다. 이럴때 보면 전혀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를 병실로 돌려 보낼때쯤에는 그의 짜증도 거의 풀려있어 오늘도 어떻게, 적당히 한고비 잘 넘긴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이 일을 하면서 정신력에도 체력처럼 한계가 존재한다는 말에 공감을 느낀다. 정신에도 용량이라는 것이 있다. 다쓰면 채워 넣어야한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이지 않았다면 나는 J의 열변을 웃으며 대처할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짜증을 낼 힘도 없다. 이게 요즘 사람들이 말하던 번아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