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art
스물넷에 시작했던 이야기였는데 어느덧 스물여섯이 되었습니다. 이렇다 할 이야기 완결도 못 했지만 결국은 글로 풀어내는 사람이라 다시 쓰게 됩니다.
간단한 근황은 대학교에 다시 다니고 있으며 여전히 약을 복용 중이라는 것 정도일까요. 성적은 잘 나오고 있지만 이제 약을 먹은지는 대략 10년에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지 일년 가량 되었는데 잘 쓴 글을 발행하려고 하기보다는 이제 그냥 더 진솔한 이야기를 끄적여볼까 합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으로 감정을 토해내곤 하던 저는 글과 뗄 수 없는 일을 하고, 전공도 그에 맞춰 다시 선택했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언어학자,시인과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생각이 더 많아진다는게 양날의 검이긴 하지만요. 생각이 많아야 예술가가 될 수 있고, 그걸 표출을 하는 사람이 예술가인거라고 하는데 저 자신이 예술가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전 예술가로 살고 싶었던 적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술가가 되기엔 평범했고 무난하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날이 서 있었습니다. 고집은 있으나 작품에 대한 아집은 없는, 그런 애매한 재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재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토해내는 표출 방식입니다.
왜 우울할까요?
저는 정답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원래 우울증에 관해 당사자에게는 힘을 주고 주변인들에게는 조언을 주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 스스로의 우울조차 해결하지 못하며 그런 글을 쓰지는 못할 것 같아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겠습니다.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안 될 수도 있겠네요.
다시 돌아가 왜 우울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변으로 몇가지 가설을 생각해왔습니다. 첫번째 가설, 감정적으로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서. 두번째 가설, 환경적 요인 혹은 유전적 요인. 세번째 가설, 깊은 상실의 상황 혹은 경험. 네번째,생각이 많으며 철학적이어서.
사실 이 모두가 함께 해당되는 것이 우울의 원인이라 생각하긴 합니다.
우울의 원인에 대해서는 프로이트의 이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리비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쉽게 풀이하자면 리비도는 인간이 다른 대상에게 투영하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리비도는 순환해야 합니다. 리비도의 순환이 단절되면 인간은 히스테리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고요. 리비도는 꼭 인간이 인간에게만 주는 것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일수도,작업물일 수도 있습니다.비전문적인 해석이지만 전 이 리비도가 우울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사랑하던 대상이 사라졌을때의 상실감,애도반응을 넘어선 슬픔, 이 모든 것들이 리비도의 단절과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줄곧 사랑이 제 우울의 원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사랑의 대상이 잘못된 경우에도, 사랑했기에 더 크게 받은 상처들도, 원했던 만큼 사랑받지 못한 경우에도,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던 때 모두에 저는 좌절하고 상처받았거든요. 이를 꾹꾹 눌러담고 감추는 것에 익숙해지자 이 상처들은 곪아서 우울의 늪을 만들어버렸고, 한번 발을 담구고 나니 끝없이 빠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인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그것이 우울의 영향이자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여전히 힘듭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은,보다 더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것입니다. 병원에서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본인을 사랑하는 법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힘듦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약점을 보이는 것이고, 도움은 어지간해서는 요청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어서요.
더 놀라운 점은, 도움을 요청하자 주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따뜻하게 도와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려와서 안아주는 사람, 선뜻 손을 내밀고 함께 있어주는 사람,맛있는 것을 먹자고 불러내서 잔뜩 먹이고는 가는 사람,괜찮다며 들어주는 사람,정성이 들어간 선물과 편지로 마음을 전해준 사람까지 다양한 방식의 따스함이 있었습니다.이전과 같았으면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을텐데, 한번 용기 내어 얘기하고 나니 밀려드는 말들과 도움의 손길에 꽤나 놀랐습니다. 절대 이 모든 마음들을 당연시 여기지 않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과, 안도감도 들더군요. 모두가 네가 여태 이런 사람이었기에,너도 망설임없이 항상 손을 뻗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기에 우리도 너에게 이러는거라고 말해주어서 아무래도 그 다정함때문에 더 살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들어두곤 합니다.저 다정함을 받았으니 조금은 더 살아야겠다고. 모순적이지만 늘 기왕 사는거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긴 합니다.살아가는 것이 싫은 것이지, 대충 살고싶은 것은 아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