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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Dec 31. 2024

무력감

시도 후의 무력과 공포

글을 다시 쓰기로 마음먹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알수없는 무력감과 두려움에 펜을 놓았었다.

간간히 찾아오는 숨막히는 우울은 여전히 내 발목을 잡는다. 사회생활에 꽤나 능숙하게 닳아버린 나는 여전히 필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표정을 짓고 필요한 말을 한다. 이제 가면을 쓰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지만, 손끝까지 찾아오는 무력감은 제어가 힘들다.


최근에 복용하던 약을 줄이며 극심한 어지럼증과 함께 찾아온 공황에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았었다. 팔목에 손톱을 박아넣으며 생각했다. 이 통증을 느끼는거 보니 이게 현실이긴 하다고, 이 반복되는 거지같은 상황이 내 현실임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이제 무얼 쓰고 싶은지도 명확하지 않다.


무릇 글이라 하면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글에 그러한 주제가 있는지도 의문이고, 토해내듯 쓰는 글에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 역시 들곤 했다.


최근에 자주 생각하게 된 주제가 있다.

나는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 역시 자유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자유를 원없이 즐긴 후에 스스로 내 머리에 망설임없이 총구를 겨눌것 같아 그게 무섭다. 지금도 삶에 대한 큰 애착이나 미련이 없는데, 그저 그런 책임감으로 연명하고 있다.

눈 떴을때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 것은 오래되었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조차 무서울 따름이다.


한창 회사생활로 힘들어할때는 아침마다 차에 치여서 회사에 가지 않을 수 있기만을 바랬고, 여전히 나는 모든 가능한 죽음의 수를 계산한다. 다행히도 이전보다는 이성적이라 실행에 옮기지는 않지만, 이제 죽음에조차 열정적이지 않은 나는 사고를 기도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달갑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누구보다도 삶을 원하는 사람도 많은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삶을 영위해야할 이유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나를 좀 편안하게 해주고싶다. 이제 우울증이 낫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고 더 나아지려고 하는 것 조차 지겹기 짝이 없다. 결국 쳇바퀴처럼 또 돌아왔고, 불행히도 나이를 먹을수록 이 커다란 우울은 나를 좀먹고 발목을 잡겠지. 어려서라는 용서의 유효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사이에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바심은 여전하다.


언제부터일까. 주변인의 넌 뭘 해도 잘 될 거라는 응원이 부담이 되기 시작한게. 상태가 좋을때는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건 단지 도약을 위한 멈춤일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나아져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너무너무 지쳐서,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아져버렸다. 원래도 크게 하고싶은 일도 없었고, 그저 자존심 상할 일이 없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일을 시작하면 책임감으로 꽤나 오래 유지하는 편이고 맡은바 의무는 다하려고 하지만, 이제 날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너무 지친다.


온 힘을 다해 모든 노력으로 빠져나왔는데 정말 잠시라도 방심하면 또다시 수렁으로 빠진다.

내가 결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만족할만하고 효율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굳이 그 과정을 거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거니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쉽게 버린다.


그만큼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없었던 것도 맞다. 엄청나게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 있었던 적도 없고, 뭔가가 굉장히 하고 싶어 죽을만큼 노력했던 적도 딱히 없다. 노력을 쏟아부었다면 보통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압도적인 결과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사람을 옆에 두지 않아 더 이상 눈치 볼 일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진심인지 자기방어의 수단인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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