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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Sep 02. 2024

끝없는 절망

가감없는 우울에 관하여

'늪지대의 진흙에 머리부터 박고 점점 깊게 빠져드는 것', 필자가 우울이라는 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묘사할 때 주로 쓰고는 하는 말이다. 갯벌이나 늪지대에 신체 일부가 빠졌을 때 발버둥치면 점점 더 깊게 빠져드는 것처럼, 우울이라는 지독한 감정에는 깊게 빠져들기가 쉽다. 


산책하기, 운동하기, 샤워하기 등 간단한 방법들로 우울을 떨쳐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벼운 우울이라면 사소한 행동들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우울증에 시달릴때에는 저 일상적인 행동들을 시도할 용기와 기력조차 생기지 않는다. 필자 역시 우울에 잠식되었을때는 지독한 우울을 저주하면서 더 빠져들 뿐이었고, 간혹가다가 무언가를 할 여력이 생기면 핸드폰 메모장에 감정을 토해내듯이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 전부였다. 


필자가 과할정도로 감정적으로 우울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울에 빠졌을 당시의 상태에 대해 쏟아내는 것은 그 심정에 조금이나마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신데, 필자가 우울증으로 입원까지 했을 당시 아버지는 시중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우울증 관련 책을 필사적으로 찾아서 읽으시며 필자를 이해하려고, 필자의 상황에 대해 파악하려고 노력하셨었다. 그 순간은 아직도 필자가 잊지 못하는 순간으로, 당시 아버지는 의사의 말을 제외하고도 우울증이라는 병을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싶은데 그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었다. 

필자 역시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던 당시 우울증과 관련된 서적들을 다양하게 접하면서 당시 필자의 상태와 그 해결법에 대해 알아내려고 노력했었다. 

의학적인 근거와 해결책 역시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때 필자와 필자의 주변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날 것 그대로의 우울증에 관한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투병일기와 같이 우울증에 대해 직접적인 이야기 혹은 경험담이 필요했는데, 적어도 당시에는 그러한 내용의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필자의 가장 아프고 약한 부분 중 하나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이유 중 하나가 필자의 아버지처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주변인이 우울증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이다. 필자 본인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내용의 정보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었을것 같다는 심정에 글을 써내려간다. 

그때 당시의 메모와 여전히 가끔씩은 찾아오는 이 숨막히는 우울에 대해 토해내듯 절박하게 써내려간 글이 그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우울감이 지속되는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하며, 우울증 역시 증상이 호전되기도, 악화되기도 한다. 약을 맞추는 과정 역시 수치값이 정확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쉽지 않을뿐더러, 감정적인 부분들은 전부 약으로 조절하기는 힘들다. 필자의 경우에는 감정과 충동을 약으로 눌러야 했기에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이 멍하고, 일상 속에서도 버퍼링에 걸리고는 했었다. 

우울증 약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그 종류만큼 부작용 역시 다양하다. 필자는 피부 발진과 혈압 저하 등 다양한 신체적 부작용부터 두통, 멍한 증상, 어지럼증 등 다양한 부작용을 겪어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치의와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약을 조절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우울증 약은 감정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바닥의 선을 지켜주고 충동 역시 억제해 주는 역할이 있는 것이다. 필요시에 먹는 약들은 강제로 신체와 정신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공황발작을 나아지게 하는 역할도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에는 약 없이 견디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약 없이 감정은 끝없이 추락할 수도 있고, 이전과 다르게 매우 충동적인 행동들을 할 수도 있다. 우울증 환자에게 충동적인 행동은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에, 하한선과 상한선을 약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약을 먹어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우울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가 느낀 약의 기능은 더 이상 우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울하다는 생각을 덜 하도록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이었다. (물론 약의 강도에 따라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며 약물 치료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 중 하나이기에 필자의 경험을 듣고 병원에 가지 않는다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경우는 없기를 바란다.)


우울이라는 것을 감정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울은 나에게 정말 숨 막히는 감정이다. 실제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된다. 가슴을 누군가가 조여내고 밟는 것처럼 아파 고통스럽고,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기본적인 행위조차 버겁게만 느껴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고, 외출은 혼자서 마음먹고 하기에는 꽤나 버거운 일이 되어버린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나와 불안에 잠식될 때는 또 다른 감정이 든다. 형체 없는 불안이기에 원인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때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려 진정시키는데에도 한참의 시간이 걸리며, 손이 떨리고 숨이 잘 안 쉬어지기도 한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명치쪽과 심장을 누군가가 꽉 쥔 것처럼 어깨를 펴기 힘들정도의 통증에, 물 속에 들어간 것 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누워서 베개를 끌어안고는 울거나 주저앉아 통증이 지나가기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러한 증상들이 지속되면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빨리 이 고통을 끝내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조금 나아지더라도 언제 통증과 호흡곤란이 찾아올지 몰라 외출하는 것이 무섭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우울 속 시간은 놀라울만치 가지 않아 억겁의 시간마냥 느껴지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말 역시 매분매초가 고통인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에 두달 가량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다가 밖으로 나가게 된 계기는 분노였으나, 이는 뒤에 자세히 따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그래도 살아지더라, 의지가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팔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의지가 부족해서 낫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병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의지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 의지조차 꺾어버리는 것이 우울증이라는 병이다. 

삶에 대한 마지막 애착마저 잃어버리고 살아갈 의지가 생기지 않는 사람에게, 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감히 마음을 독하게 먹으라는 말을 입에 담아도 될까 의문이다. 


정신과의 문턱이 이전보다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느끼기에는 여전히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약점이 될 때가 많아 숨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질병은 본인이 가장 힘듦에도 불구하고 한마디씩 얹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아픈 상태에서 그런 말들은 비수가 되어 꽂히고는 한다.


필자 역시 우울증을 나약함으로, 혹은 단점이자 약점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 덕분에 받은 상처가 꽤나 많고 깊다. 상황에 대한 인지도, 인지를 위한 노력도 하지 않은 주변인에게 들은 나약함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아픈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는 필자가 속 얘기를 거의 하지 않고 점점 안으로 파고들고 모든 감정을 묻어버리는 계기를 주었을 뿐이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한명이 필자의 우울증을 필자의 단점으로 이야기하고 터무니없는 극복책을 제시했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회복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일상 속으로 다시 발을 내딛었고,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데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면 과연 어느 누가 괜찮을 수 있을까.


사람이 아픈 것을 약점으로 잡는 사람들이 충분한 지성과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지도 죄가 되는 경우가 있으며, 공감능력도 지능이라고 하지 않는가?

최소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이 당신 옆에는 없길 바라며, 만약 주변에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남의 힘듦을 재단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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