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
필자는 7년째 누구보다 사람을 싫어하고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동시에 그만큼 사람을 사랑하고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모순된 사람이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22개국 중 청소년 행복지수 22위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의 일원으로서 언젠가 한 번쯤은 풀어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7년간의 이야기들은 모두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들로, 앞선 이야기들보다는 무겁겠지만 필자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기에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최근 들어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이전보다 정신과의 문턱 역시 확연하게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는 나라, 우리나라에서 마음의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 그 주변인들에게 필자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래 이야기들이 의학적 참고자료보다는 투병일기와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우울증은 감기와 같은 것이다"라는 말, 보통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신체적인 질병처럼 정신적 질환일 뿐임을 강조하기 위한 말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문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내가 겪은 우울증은 감기처럼 단순하지도, 왔다가 가는 질병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대한 인식강화로 정신과 진입 문턱이 낮아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결코 가벼이 생각해서는 안 될 질병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시작하고 싶다.
서울대병원 자료에 의하면 우울증, 혹은 우울장애는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이라고 한다.
우울증은 단순하게 우울한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울한 상태를 우울감이라고 한다고 하면, 우울감이 3주 이상 지속되는 것을 우울증, 우울증이 오래되면 그것을 만성 우울증이라고 정의한다.
본인도 우울증을 겪기 전에 우울증 환자의 모습을 생각하면 늘 울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울은 슬픔과는 또 다른 감정이다. 무기력하고, 늪 속에 머리부터 빠져 헤어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것 같은 상태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우울증이 가장 심했을 때 눈물은커녕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실제로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죽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살아 숨쉬는 모든 순간이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고통에 무뎌질 때 쯤에는 아무런 감정도, 애착도, 사랑도 행복도 남지 않았었다.
필자의 우울증이 발병한-정확히는 정신과를 방문하게 된-시기는 고등학교2학년 겨울이었다.
몇 년간의 기억이 드문드문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몇몇 기억은 꽤나 선명한데, 처음 병원을 방문했던 순간은 아직도 시리게 선명한 기억이다.
당시 일주일에 네 시간을 잘 정도로 극심한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던 나는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치솟은 예민함으로 주변인들이 보기에도 꽤나 불안해 보였던 모양이다. 친구의 조언으로 교내에서 상담을 잠시 받았으나 상담 선생님의 인계로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후로 병원과 상담센터를 수없이 옮기면서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았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정신과의 문턱이 지금처럼 낮지는 않았기에 병원을 찾아가는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았었다.
병원을 찾아갈 무렵즈음, 필자는 우울증임을 예감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했다. 그간 노력했던 입시가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이었기에 약으로 해결된다면 약의 힘을 빌려서라도 입시의 결과를 보고싶었고, 온갖 강박과 불면, 우울에서 벗어나고 싶음과 동시에 나약함의 증거인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 자체를 부정하고싶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던 와중 반복된 검사와 상담이 가져다 준 것은 좌절뿐이었다.
당시 필자는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입가에 경련이 올 정도로 늘 웃는 모습을 유지하고는 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늘 웃고 있던 필자의 모습만 보았던 주변인들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었던 필자의 진단명은 '가면성 우울증'. 직관적인 진단명처럼 필자는 늘 꾸며낸 가면을 쓰고 생활하고는 했었고, 강박적이고 필사적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가장 위태위태하던 시기에 우울증 진단에 이어 가히 처참했던 검사결과는 위태롭던 필자의 상황에 이것도 견뎌보라고 비웃는 듯 한 술 더 뜬 내용이었다.
어휘력은 만점에 가까운 수준으로 그대로에 가까우나 인지능력과 집중력이 '장애수준'이라고 표시되어있는 검사지는 당시의 필자를 무너뜨리기에 모자람이 전혀 없었다. 입시를 마무리지어야 할 시기에 신체적인 질병으로 따지면 중환자 수준의 우울증이라는 진단은 치명적이었고, 그 결과를 믿을 수 없어 울다 지쳐 탈수가 올 정도로 울기도, 검사지를 찢기도, 주치의에게 제발 약을 늘려서라도 입시를 마무리지을 수 없겠느냐며 애원하고는 했었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 생일 무렵 필자는 대학병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미디어에서 주로 묘사되곤 했던 것과 같이 하얀 병동에 감금되는 병원이 아니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이러한 입원도 흔한 경우는 아니다. 증상의 경중과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그때 당시에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짐에 이어 죽음에 이르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던 와중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은 생각보다도 더 쓰라렸고 좌절만을 안겨주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증상이 완화되기도, 악화되기도 하였는데 드문드문한 기억 속 아직도 선명하게 가장 본인의 상태가 안 좋았던 때는 입원했을 무렵과 스무 살 초반 두 달가량 집 밖으로 아예 나가지 않았을 때라고 생각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시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 위에 누워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거나 잠을 자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고, 입원했을 당시에는 다양한 증상들이 나와 힘들어했던 기억들이 어렴풋이 있다.
입원 당시에는 악몽과 심한 불면은 물론이고 환청에까지 시달렸으며, 후에는 울지도 않고 깨어있는 시간에는 주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보냈던 것 같다. 악을 쓰다가 지쳐 떨어진 어린아이처럼 무기력한 상태를 지속하다 한움큼의 약과 함께 퇴원한 이후에도 상황은 악화되기만 할 뿐이었다.
꿈과 현실을 도무지 구분할 수 없어 매일이 악몽 속에서 사는 것만 같았고, 그럴 때에는 손목에 붉은 흔적을 남겨서라도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또다시 절망해야만 했었다.
손이 닿는 모든 곳에 날카로운 것들을 부모님께서 숨기셨을 때 즈음, 당시에 나는 불면증과 공황장애는 물론이고 인지능력까지 현저하게 저하되어 집 비밀번호를 까먹는 수준의 기억력과 일상생활 속의 대화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말소리가 웅웅 거리며 퍼져서 들려 사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말을 꺼내는 일 역시 어려웠다.
매일이 새로운 좌절의 연속이었고, 이성적인 상태는 커녕 일어나서 씻고 화장실을 가는 간단한 행위조차 몸에 몇백키로짜리 추를 달고 있는 듯 너무나도 버거웠었다. 필자의 가족들은 이때 공허하고 초점조차 제대로 없는 눈으로 멍하니 누워있기만 하는 필자를 보며 필자가 꼭 고장난 인형처럼 기계적으로 겨우 움직이고, 생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삶의 의지가 아예 사라진 것 같아 불안했다고 한다.
당시 필자는 약도 불규칙적으로 복용하곤 했었고, 상담 역시 거부했었다. 간혹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상담에서는 절대로 속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며 스스로 심연에 머리를 넣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필자의 부모님과 두 동생들, 그리고 주변인들은 필자를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필자를 심연에서 꺼내려 노력해주었다. 주변인의 도움만으로 나아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객관적으로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주변인의 도움 없이는 아예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에 가까웠기에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에 주변인의 공이 지대했다고 이야기하고싶다.
만약 본인이 힘든 상태라면 주저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를 바라며, 반대로 주변에 위태로운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은 손을 뻗어주기를 권한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조그마한 삶에 대한 애착을 형성하게 해 줄 수도 있으며, 끝이 없는 듯한 늪에서 한 발자국 나올 용기를 줄 수도 있다.
우울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의 메모를 뒤적여보면 '죽고 싶다'보다는 '죽어야겠다'로 생각이 결론지어지고는 했었다. 모든 끝이 죽음으로 귀결이 되고 이미 삶에서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애착 역시 없어진 상태에서 죽는 것이 가장 쉽고 간단한 해결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우울 속에서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가지 않고 그 모든 순간순간이 숨이 막힐 만큼 고통스럽다.
그 시간을 경험해 본 사람 중 하나인 필자는 진심으로, 모든 힘든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실현에 옮길 때 그 발목을 잡는 것이 하나쯤은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책임감일 수도, 죄책감일 수도, 실낱같은 희망일 수도, 혹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단순한 이유여도 좋으니 당신이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