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날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고 싶다면

by 구키

몇 년 전 저에게 아주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금요일 퇴근길에 마음이 헛헛해서 연락할 사람이 있을까 하여 핸드폰 속 SNS 친구 목록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지만 딱히 마음을 이야기할 만한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되면 예고 없이 불쑥 전화해서 누군가를 불러내기 어려워지기도 하고요.


헛헛한 마음을 안고 자주 가던 서점에 가서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훑어보았습니다. 그 중 한 책이 눈에 띄더군요. 故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이라는 책입니다.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던 저자는 어릴적 앓았던 소아마비로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습니다. 영문학자이자 번역가, 컬럼니스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세 번이나 암에 걸렸고, 결국 2009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유작인 그 책을 사 들고,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카페의 구석 자리로 갔습니다. 창 밖에는 퇴근시간을 맞아 저마다의 길을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모두가 주말을 앞두고 설레어보이는 그 시간, 저는 혼자였습니다.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그 책을 찬찬히 읽어보는데, 항암치료를 받은 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지난번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항암제를 처음 맞는 날, 난 무서웠다. ‘아드레마이신’ 이라는 정식 이름보다 ‘빨간약’ 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항암제. 환자들이 빨간색을 보기만 해도 공포를 느끼고, 한 번 맞으면 눈물도 소변도, 하다못해 땀까지도 빨갛게 나온다는 독한 약. 온몸에 매캐한 화학물질 냄새와 함께 빨간약이 내 몸에 퍼저 갈 때, 최루탄을 맞은 듯 눈이 따가웠다. 그날 밤 문득 잠을 깼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옆 침대에서는 동생 둘이 간병인용 침대 하나에 비좁게 누워 잠이 들었고, 쌕쌕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에 천장의 흐릿한 얼룩이 보였다. 비가 샌 자국인가보다. 그런데 문득 그 얼룩이 미치도록 정겨웠다. 지저분한 얼룩마저도 정답고 아름다운 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 세상을 결국 이렇게 떠나야 하는구나.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대 난간을 꼭 붙잡았다. 마치 누군가 이 지구에서 나를 밀어내듯.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난 완강하게 버텼다.


이 세상에서 나는 그다지 잘나지도 또 못나지도 않은 평균적인 삶을 살았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다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평균 수명은 채우고 가리라. 종족 보존의 의무도 못 지켜 닮은꼴 자식 하나도 남겨두지 못했는데, 악착같이 장영희의 흔적을 더 남기고 가리라.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때…’ 생각하고 좋은 일 하나 못했는데 손톱만큼이라도 장영희가 기억될 수 있는 좋은 흔적 만들리라.


언젠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느 학생이 내게 물었다.

“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서 비파를 켜면서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파로 켜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기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갈 것입니다. 이런 허망한 희망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요?”


그때 나는 대답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오를 것이고, 그럴바엔 노래를 부르는게 낫다고.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 물이 빠질수도 있고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PP. 238-239



어디서 이렇게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힘을 장영희 교수는 얻은 걸까요?


이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싸워야 하고,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기에, 설사 이기기 위한 방법이 좀 비인간적이라 할지라도 상관없는 분위기 속에서 온통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애썼던 시절, 강력한 무언가가 마음 깊은 곳을 적시는듯 했습니다.


그녀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어머니 등에 업혀 다녀야했고, 두 시간 마다 어머니는 학교에 가서 화장실을 가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그녀는 국내 대학의 박사과정에 응시했지만, 면접장에서 “장애인은 안 받는다”는 거절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1년동안 준비를 거쳐 뉴욕 주립대학교 올버니(SUNY Albany)로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박사학위를 땄는데 아버지가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마침내 모교의 교수가 되었는데 세 번이나 암에 걸려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글이 감동으로 다가왔던 건, 그녀가 고통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했고 그것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고통으로만 이해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바닥을 쳐보고 나서 다시 올라오는 사람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날 저는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사랑과 인내와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지금 마음이 많이 힘드시다면, 장영희 교수가 제자 민숙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학창시절 재능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했던 민숙은 졸업 후 결혼한 남자에게서 큰 상처를 받고 헤어졌고, 그 후에 만난 사람과도 힘든 일을 겪고 헤어지게 되었지요. 결국 두 살짜리 아기와 혼자 남게 된 민숙에게 장영희 교수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씁니다.



민숙아,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 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안에 좌절하여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몇 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 꼭 네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다고 한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서 있단다. 눈보라가 얼마나 심한지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무릎 꿇고 사는 법을 배워야 했던 것이지. 그런데 민숙아,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온갖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나름대로 거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며 제각기의 삶을 연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민숙아, 너는 이제 곧 네 몫의 행복으로 더욱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 위해 연습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 – 이것이 아까 네 뒷모습에 대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민숙아, 사랑한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PP. 117-118



저는 이 편지에서 ‘민숙’을 제 이름으로 바꾸어서 읽어보았습니다.


이것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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