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

오래전 언어에도 온도가 존재한다는 내용를 담은 “언어의 온도”란 제목의 책을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말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제목이 말장난 같기도 하고 언어유희적 표현이 기발은 하나 그저 그런 산문집이려니 하며 썩 구미가 당기진 않았다. 선물 받고 한참 후 꺼내어 본 책은 내용이 튼실했고 작가의 깊은 정성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았다.


작가는 사람의 말에도 온도가 느껴진다고 묘사했다. 용광로처럼 너무 뜨거워서 상대가 화상을 입을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나 차가워서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말도 있다고. 듣고 보니 딱 맞는 말이었다. 화가 치밀어 분노를 쏟을 때 나오는 말들은 상대의 자존까지도 태워버리는 경우도 있고 감정 한 스푼 들어가지 않은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말들은 상대도 함께 말라버리게 만들곤 한다.


말의 중요성에 대해선 제도권 안에서의 교육이 아니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이나 친구와의 사소한 오해로 생긴 다툼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된다.

쌀로 지은 밥을 가지고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을 테스트하는 실험을 한 방송국에서 했다. 밥을 통 2개에 나눠 담고 몇 주간 한 통에는 ‘사랑해, 고마워’ 등 긍정적 언어 표현만 하고 나머지 한통에는 ‘너 미워, 넌 왜 그렇게 못하니’ 등등 비난과 상처가 될만한 부정적 언어만을 사용해서 그 밥들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칭찬과 사랑의 말을 들은 밥알들은 비록 보존기간이 길어 곰팡이가 생기긴 했으나 이쁜 하얀 곰팡이가 피었고 미움만 받던 밥은 시꺼멓고 퍼런 곰팡이가 득실득실 육안으로만 봐도 차이가 확연했다.

사랑과 미움을 받은 것은 사람도 동물도 아닌 그냥 우리가 매일 먹는 쌀밥이었다. 실험을 했던 아나운서는 매일 그 두 통에다 대고 말만 했을 뿐이었다. 동일한 온도와 동일한 통, 모두 같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따뜻한 온도의 말을 들었던 밥은 사랑스럽고 이쁜 곰팡이 꽃을 피웠고 뜨겁고도 차가운 온도의 말을 들었던 밥은 스스로 장렬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그 두 밥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 방송을 보기 전 엄마들과 심리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동그랗게 서로 손가락을 잡고 앉아서 상대에게 좋은 말 나쁜 말을 번갈아 하는 게임이다. 칭찬의 말을 들었을 땐 저절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다른 사람이 풀려고 해도 풀어지지 않았다. 반면 “너는 왜 그렇게 멍청하니” 같은 비난의 말을 들은 순간 손가락과 온몸에 힘이 쫙 풀어져 원은 금세 끊어져 버렸다. 진심이 아니라 게임상 인위적으로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말이다.

이렇듯 말의 온도가, 상대가 내뱉는 말이 나에게 꽂혔을 때 넘치는 에너지를 얻을 수도, 무너지는 자존감으로 우울감과 무기력함만 남기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해봤다. 나의 언어의 온도는 얼마쯤 될까?


너무 뜨거워도 안되고 차가워도 안 되니 적정 난방온도인 22도쯤 되면 좋을 텐데 궁금해졌다. 남편은 나의 언어 온도는 자기한테는 건조, 딱딱하고 딸애에게는 따뜻하다고 말했다. 평소 용광로 언어를 수시로 발사해서 내 맘속에 화상을 잔뜩 입힌 주범에게 들을 평가는 아닌 것 같아 은근 화가 났지만, 일관성 있는 언어 온도를 유지하는 것 또한 주효할테니 내 맘속 따스한 모닥불을 계속 지펴보기로 했다. 그 모닥불로 가족들 뿐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도의 언어로 그들의 마음까지라도 따뜻하게 하고 싶다. 따스함을 품은 긍정의 언어를 내뱉는 나의 맘도 그 말을 들은 상대도 모두 함께 편안해지고 싶다. 아직은 상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나의 언어 온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을 시작해야겠다. 이 작은 발걸음이 하얗고 이쁜 곰팡이를 핀 긍정의 밥처럼, 나의 맘속에도 다른 이의 맘속에도 사랑스런 씨앗을 심어 긍정의 열매로 주렁주렁 맺게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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