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는 평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겉으론 툴툴거리진 않아도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대략 안 좋은 생각들이 반을 넘게 차지하는 것 같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불평불만이라기보다는 과거 안 좋았던 기억을 일부러 계속 곱씹으면서 억울해하거나 그땐 왜 내가 가만히 있었지 하며 후회를 하는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다. 갑자기 툭 기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관련된 과거 일들이 줄줄이 소환되곤 한다. 말수가 적은 대신 생각을 주로 하다 보니 생긴 버릇 같기도 하고 예전에 도형심리검사를 해 본 적이 있었는데 기질적으로 자꾸 우둘 모드로 빠지려는 경향이 있다는 평가도 받기도 했다.


이런 나의 기질 때문인 건지 다른 이유 때문인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에겐 남들보다 안 좋은 조건들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누구나 나의 짐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무겁게 느껴지는 게 사람이긴 한데 나는 세상 더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느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자신감 있어 보이고 밝은 사람도 있고 먹구름 잔뜩 낀 사람처럼 지치고 어두워 보이는 사람도 있고 가지 각색이었다. 하지만 밝은 미소의 사람이나 우울하고 힘든 내색이 역력한 사람이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지고 있었다.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니 걱정, 불안감은 늘 세트처럼 따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그래도 조금 더 내 맘이 편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십 년 넘게 아이 치료와 양육에 힘쓰다 보니 지치기도 했지만 상황이 바뀔 수 없다면 내가 변화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명언이 있듯이 말이다.


남들과 다른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부끄럽고 인정하기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내 아이는 장애가 아니야, 그저 잠깐 어떤 이유로 엉뚱한 면이 있는 것뿐이지 곧 좋아질 거야’하며 완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정작 아픈 아이를 더 힘들게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런 기대는 점점 내려놓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한계가 분명히 있음을 인정하니 기대치에 못 미치는 행동에 좌절하기보다는 작은 변화에 감사함과 소소한 희망이 느껴졌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더니 나의 생각만 바꿨을 뿐인데 내가 편안해지니 아이도 편해지는 것이 보였다.

아이를 치료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헌신’이란 포장지를 감싸고 정말 애는 오지게 많이 썼지만 정작 아이는 달갑기는커녕 불편했던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아이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 했고 결정할 권리를 인정했어야 했는데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다 빼앗아 가버려 서로가 더 지쳤던 것 같다. 지금은 예전보다 아이가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이고 무엇이 불편하고 힘든지 어떤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즐거울 수 있는지 조금 더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나는 현재 진행형 엄마 수업 중이고 갈길이 멀 것을 체감한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앞뒤 물불 안 가리고 직진은 아니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짐을 느낀다.


아이의 다름이 상처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책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처음 들었던 생각이 ‘그래 살기 힘드니 그렇게라도 위안 삼으며 살아야겠지’라는 조금 비꼬는 맘이 들었다. 역시나 부정적이었던 나의 내면의 반응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주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아직은 축복의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일상 속에서, 아이의 삶 속에서 작은 감사함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별일 없이 편안하게 보내고 온듯한 엷은 미소를 보며 안도감과 함께 감사함을 가지게 됐다. 아이에 대한 엄마로서의 죄책감 후회감, 타인에 대한 원망 분노 이런 내 맘 속 가득했던 부정적 기운들을 나는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한 가지도 없었다. 그 문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것을 요즘 더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부모상담을 통해 감사일기를 써보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엔 도통 쓸 말이 없어 헤매고 있는데 상담사의 조언이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것이나 멀쩡한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것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정말 감사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때 뒤통수를 확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평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닌 듯 내가 아이의 단점만 온통 신경 쓰다 보니 아이가 갖고 있는 장점들은 모조리 묵살해버리고 문제아로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생각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고 한다. 나는 생각의 작은 변화로 내 인생의 꽃길을 기대해 보게 됐고 더불어 우리 아이의 꽃길까지도 보이는 듯하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혜민스님의 책 제목처럼 나는 이제야 내려놓으니 비로소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아 감사함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기쁘게 된다는 말처럼 행복함을 느끼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었다.

내려놓기까지의 여정이 꽤 멀고도 험난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 과정이 내게는 꼭 필요했던 것 같다. 등산할 때 배낭이 비록 무겁지만 점퍼나 물, 간식, 약 등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정상까지는 힘들지만 짐을 메고 간다. 만약 그 짐을 중간에 다 내려놓으면 당장은 가볍고 편할지 몰라도 정상까지 가는데 목이 마르거나 춥거나 해서 더욱더 힘들게 된다. 또 정상에 도달했을 때 꼭 가져와야 할 것을 버리고 왔다면 다시 되돌아가야만 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나는 나의 시련이 그 배낭 속 짐처럼 반드시 정상까지 가는데 꼭 필요한 물건처럼 생각된다. 그래서 걸어가는 길이 무겁고 버겁지만 버틴다. 그리고 중간 중간 반드시 필요한 물건 이외 것은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지혜, 내려놓음 까지 생긴 것 같아 조금의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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