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이

내 입장에서 완벽한 아이

최근 부모교육을 통해 ‘완벽한 아이 팔아요’란 책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아이를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 쇼핑한다는 소재로 책은 시작되었다. 책 속 부모는 ‘완벽한 아이’ 모델을 선택해 집으로 데리고 간다. 엄마가 밥을 준비해 주지 않아도 아빠가 하교 시간에 늦게 와도, 아이는 보지 못하게 하면서 부모는 소파에 앉아 tv를 봐도 혼자 조용히 책을 보며 불평 불만 없이 늘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하는 완벽한 아이. 책 제목에서처럼 완벽한 아이처럼 보인다. 부모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도 투정 한번 없고 공부도 잘하고 예의바른 아이. 하지만 그 아이도 부모의 무관심에 드디어 폭발을 하게 되고 놀란 부모가 수리를 맡기러 마트에 간다. 점원은 아이에게 부모가 맘에 드는지 물어본다. 아이는 ‘완벽한 부모’를 찾아줄 수 있냐고 되묻는다. 그 뒤 이야기는 더 전개되지 않았지만 뒤 표지의 그림을 보아 완벽하지만 아이 같지 않았던 아이와 어른 답지 않았던 부모는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솜사탕을 먹고 있었다. 결론을 확실히 알수 없었지만 진짜 가족이 되는 긍정적 상상을 할 수 있는 책이였다.


아이를 판다는 설정이 매우 불편하긴 했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훌륭한 그림책이였다. 우선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수고를 덜어줄 순하고 완벽한 아이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다. 짜쯩 내는 법 없이 매사 순종적인 자기일을 알아서 척척 잘 하는 아이는 많은 어른들이 꿈꾸는 자녀상이지만 사실 평생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과연 행복한지 직접 되묻고 싶을 것 같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 잘 듣는 ‘완벽한 아이’에 대한 기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없이 낮아지다 아예 기대도 못하게 됐다. 대신 내 아이가 말을 조금 더 잘 했으면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생겼으면 학교에서 아이 문제로 연락오지 않았으면 하는 등 등 보통 부모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내게는 소망이 되는 입장이 됐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책을 보면서 덜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가만히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아이는 치료를 위해 센터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2년전 쯤에는 자기가 왜 센터에 가야하는지 물었고 몇 살 때 까지 다녀야 하는지도 물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직면할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사실대로 말해줬다. 감정조절이 잘 안돼 짜쯩이 폭발하니 필요하다 했고 또 말을 또래 친구들처럼 할 정도가 되면 모든 치료를 종료할 수 있다고... 아이는 별 말 없이 지금껏 그냥 저냥 하는 수 없이 치료센터를 8년째 다니고 있다. 아이를 위해 분명히 치료목적으로 다니고는 있지만 한 편으로는 지겨운 치료실을 아이가 엄마의 바램을 위해 다니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치료실을 그렇게 오래 다녔지만 아직까지도 눈에 보일 치료 효과를 느껴본적은 사실 없다. 느리지만 성장한 것은 맞다. 근데 그것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저절로 좋아진건지 치료의 효과인지 모를만큼 미비하다. 병원이나 학교에서 치료를 권유하고 치료실을 다니지 않으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놓지 못하는 것도 있다.


과거보다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감정이 폭발하여 자해나 공격행동을 보이는 딸이 그저 장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고통을 혼자 참다 참다 정말 폭발한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든다.

아이를 13년째 키우면서 딸아이에 대해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자부했지만 여전히 딸의 세계는 내게는 숙제 같다. 다른 부모들보다 몇 십배의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하는 현실이 괴롭고 힘들어 나의 고통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원인인지 모를 고통에 신음하는 딸의 심정을 엄마인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자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느린 아이임을 인정하면서도 맘속 불안함과 조바심이 느림을 조금 빠르게로 바뀌게 하려고 아이를 재촉하고 숨막히게 하지 않았을까 내 나름의 '완벽한 아이' 틀을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keyword
이전 01화네잎 클로버